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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위탁 생산하는 모더나사(社)의 코로나19 백신이 이번 주부터 국내에 풀리면서 재계 안팎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정중동 리더십’이 회자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진두지휘를 건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백신 생산을 해결해야 할 1순위로 과제로 꼽고 노력·시간을 쏟아냈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 8월 가석방 출소 당시부터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라는 새로운 ‘뉴 삼성’ 기조를 염두에 두고 물밑 경영 행보를 폈다는 의미다.
추석 연휴도 반납했다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8월 중순은 4차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때였다. 여기에 모더나 유럽 공장발(發)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지연사태로 국내 분위기는 매우 뒤숭숭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이 부회장의 백신 역할론을 언급하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은 날로 커졌다. 물론, 당시 삼바는 모더나와 협력 생산의 기틀은 갖췄으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처음 생산하는 것인 만큼 인허가 문제·안정적인 대량 생산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해있었다.
이 부회장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삼성의 기술·리소스를 결집해 생산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고, 이는 곧 삼성전자·삼바·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삼성 최고 경영진으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 구성으로 이어졌다. 당시 TF 내부 분위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휴일과 추석 연휴까지 반납한 채 연일 △체크 리스트 작성 및 점검 △컨퍼런스콜 실시 △각 계열사의 전문가 투입 △각종 인허가 문제 신속 대응 등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 공장팀은 생산 초기 낮았던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을 끌어올렸고, 까다로운 이물질 검사 과정엔 삼성전자 반도체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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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 개인의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도 한 몫 톡톡히 했다. 모더나와 거래관계에 있던 오랜 지인을 통해 모더나 최고 경영진을 소개받고 영어의 몸에서 풀리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8월 화상회의에 나선 것이다. 이 부회장과 이 최고경영진은 당시 회의에서 단기적으로 성공적인 백신 생산을 통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바이오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데 입을 모았다고 한다. ‘위탁자·생산자’ 수준에 그쳤던 양사 관계는 이후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함께 논하는 파트너 관계로 격상됐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 TF 구성 등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한 데 아우러지면서 안정적인 대량생산 체계가 구축됐고, 이는 백신의 국내공급 일정을 애초 연말에서 10월로 앞당겼다.
‘뉴 삼성’ 행보 신호탄
삼성과 모더나 간 ‘파트너’ 구축은 백신의 안정적 공급을 넘어 ‘백신 허브’로서의 국가적 위상 제고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양사는 ‘미래 사업’ 분야에서도 협력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탄탄한 ‘신뢰 자본’을 갖췄다”며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반도체를 잇는 ‘K-바이오’ 비전 실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번 모더나 백신 생산 및 조기 국내 공급은 ‘뉴 삼성’ 행보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내놓은 첫 공식 메시지에서 이 부회장은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언급한 바 있다. 향후 이 부회장이 작금의 ‘잠행 모드’를 벗어던지고 대내외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란 게 재계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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