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강성노조를 두고 있는 현대차(005380)그룹은 최근 보도자료 등의 형식을 빌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해마다 파업사태를 겪고 있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노조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문제를 통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현안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경총이 복수노조는 일정기간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사업장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스탠스를 잡은 것으로 알려지자,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이번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일 입장자료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데 이어 급기야 3일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및 협력부품사가 일제히 경총 탈퇴를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총 탈퇴 이유를 분명히 했다. 회원사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회원사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경총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현대차의 입장과 경총의 협상방향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 현대차, '전임자 급여 금지-복수노조 허용' 강경
경총과 한국노총은 지난 2일 오후 진행한 협의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하는 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다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시기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3년 유예 또는 3년에 걸친 단계적 시행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원칙대로 내년 시행을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의 경우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출발점으로, 현행법대로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조원 1만 명 이상인 사업장부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시행하자는 중재안에 대해선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조합원이 1만명을 넘는 사업장은 11개뿐"이라며 "이를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시행기준으로 삼는 것은 극소수만을 규율하겠다는 취지로, 법률의 보편적 타당성을 결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1만명 이상의 11개 사업장만 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하면 해당 사업장만 표적이 돼 단위 사업장의 노사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들 사업장들은 대부분 산하 중소 부품업체와 연합 경영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어, 하부단위 사업장의 전임자 지급 급여 관행을 단절하지 못하면 그 역작용은 주력 사업장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측면에서 불가피한 사안으로,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와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을 마련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로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더라도 큰 문제될 것이 없는 반면 노조 전임자 임금금지 문제는 성사여부에 따라 향후 노사관계의 변화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이미 노조 내의 복수 계파와 상대해왔기 때문에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노조 분할에 대해 겁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복수 노조가 허용돼도 현대차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진단했다.
◇ "이번엔 물러서지 않겠다"…`경총 탈퇴` 초강수
결국 현대차그룹이 경총 탈퇴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에는 과도한 전임자로 인한 폐해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노조가 강성화하고 정치투쟁에 치중하는 데는 전임자 임금지급 관행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것이 현대차 측의 판단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노조 전임자를 비롯해 상급단체(금속노조, 민주노총) 파견자, 임시 상근자 등 총 217명에게 연간 137억원(1인당 평균 6313만원)의 급여를 회삿돈으로 집행했다.
기아차도 144명의 전임자에게 87억원(1인당 평균 6042만원)을 지급했다. 두 회사의 노조 전임자들에게 연간 224억원이 지출된 셈이다.
따라서 현대차그룹 측은 어차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기준을 맞추기 위해 복수노조를 허용해야 한다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중재안대로 조합원 1만명 이상 대기업 사업장에만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이 금지될 경우 초기에는 완성차업체의 노사관계가 상당한 갈등과 대립을 겪게 되고, 그 여파는 그대로 부품업체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완성차업체의 노사관계가 안정화된다 하더라도 부품업체들은 여전히 노조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면서 음성적이고 불합리한 노사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조합 관계자는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노조 전임자에게 사용자가 급여를 주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어긋날 뿐아니라 이미 13년간 법을 유예해줬다"면서 "현행 법에 따라 반드시 전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경총이 단계별 도입을 주장하자 현대차그룹은 전 계열사 및 부품협력사 탈퇴라는 총강수를 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이처럼 강경한 움직임이 고질적인 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는 매년 노사분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정부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래왔다"며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수립하고자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최근 현대차의 차량 가격 인상의 배경에 노사분규에 따른 낭비 요인 등도 포함된다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 요인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르노삼성이 뉴SM5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올리지 않은 것은 건전한 노사관계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 요인이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대차도 건전한 노사관계를 수립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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