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합창’의 연주 역사를 돌아보면 이 곡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얼굴이 숨어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는 ‘자유’의 상징이었지요. 그 해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키로프 극장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등으로 구성된 연합 교향악단과 함께 ‘합창’을 연주하며,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했습니다. 당시 공연에는 실러의 ‘환희의 송가’ 대신에 ‘자유의 송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같은 해 11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반(反)독재 민주화를 부르짖는 ‘벨벳 혁명’이 한창이었습니다. 한 달 뒤인 12월 14일 체코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에서도 체코 필하모닉이 ‘합창’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무대에 올라간 지휘자 바츨라프 노이만(Neumann)과 단원들의 가슴에는 ‘벨벳 혁명’을 지지하는 배지가 달려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선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된, 극작가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입니다.
|
음악이 지닌 빛은 하나이겠지만, 시대 상황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아마도 여러 가지 색을 내는가 봅니다. 올해도 어김 없이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KBS 교향악단, 지휘 오트마 마가, 20일 오후 8시 KBS홀, 21일 예술의전당, (02)781-2241
▶대전시향, 지휘 에드몬 콜로메르, 29일 오후 7시 대전문화예술의전당, (042)610-2266
▶ 관련기사 ◀
☞''조수미 · 신영옥''이 선사하는 행복한 송년
☞''포르투 콩쿠르의 별'' 김태형·이정은 피아노 독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