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발언은 자진사퇴 의사가 없고 내년 3월 주총까진 현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금융당국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라 회장의 희망과 달리 직무정지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면 그 즉시 업무에서 손을 떼야 해 후계구도를 구상한 시간을 벌지 못하게 된다. 이같은 절박한 상황을 당국이 알아달라고 호소한 셈이다.
◇ 중징계 수준 최대한 낮추기 포석..문책경고 땐 내년 3월까지 시간 벌어
라 회장의 계획대로 내년 3월까지 현직을 유지하기 위해선 금감원이 오는 11월4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라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를 `직무정지`가 아닌 `문책경고` 수준으로 확정해야만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라 회장에 대해 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포착하고 중징계 방침을 이미 통보한 상태다.
라 회장이 문책경고를 받으면 연임은 불가능하지만 현직을 유지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현직을 유지하면서 후계구도를 구상할 시간을 벌게 된다. 라 회장이 이날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 관련, "밑에 시킨 게 관행적으로 계속 이어져왔다"며 차명계좌 운용에 대해선 인정하면서 자신이 실명제 위반의 행위자나 감독자가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해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문료 횡령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고 일축했다.
라 회장은 그동안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더욱이 이번 신한사태 이후 공식입장을 밝히길 꺼려왔다. 따라서 라 회장이 이례적으로 60~70명의 취재진 앞에서 이같은 공식입장을 표명한 것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간접적으로 금융당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 회장이 이날 `조직안정과 발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거론하며 당국의 징계로 물러날 경우 경영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배경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직무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곧바로 퇴출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
라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 방침이 통보된 이후 신한금융측은 "라 회장이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며 "지금 당장 나가라(사퇴하라)고 하면 신상훈 사장도 직무정지된 상태에서 신한금융의 대표권을 누가 행사하겠느냐"고 언급해왔다. 내년 3월 주총까지 시간을 벌고 후계구도를 구상해야 한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내비쳐 온 것이다.
아울러 라 회장은 3인 동반퇴진에 대해서도 "혼란기에 쉽지 않다"며 "누군가는 수습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동반퇴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이 역시 내년 3월까지 라 회장이 구상할 후계구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라 회장 입장에서 조기 불명예 퇴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라도 이백순 행장 만큼은 조직안정과 사태수습을 위해 그룹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 직무정지 땐 이사회 중심의 사태 수습 수순될 듯..하마평 무성
그러나 당초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 예상했듯 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수준의 징계가 확정한다면 라 회장의 이같은 구상도 수포로 돌아간다.
신한금융은 아직까지 이사회 일정을 잡지 않았고, 후계구도와 관련한 논의도 없었다. 다만 제재심에서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면 후계구도 구상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판이다.
이럴 경우 이 행장을 직무대행으로 세워 비상경영체제를 꾸려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장 역시 라 회장, 신 사장과 함께 검찰 수사를 받게 될 입장인데다 사법처리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따라서 사외이사들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해 제3의 인물로 직무대행이 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직무대행, 더 나아가선 `포스트 라응찬`으로 거론되는 인사로는 류시열 신한금융 비상근이사와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차관,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다. 내부 출신 인사 중에서는 이인호 전 신한금융 사장,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고영선 전 신한생명 사장, 최범수 신한금융 부사장, 위성호 부사장 등이 모두 공석이 될 CEO 후보군으로 꼽힌다.
또 신한금융의 3인방 동반퇴진 압력이 거세질 수록 후계구도를 둘러싼 `관치` `정치` 등의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중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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