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사실 지리멸렬 수준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메가톤급 악재의 여파로 대권으로 가는 나침반을 잃었습니다. 정치적 재기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새누리당은 유력 대선후보가 사실 없는 상황입니다. 오죽하면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이 대안으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정당 지지율은 정의당에도 뒤지고 있습니다. 유승민·남경필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지지율은 마의 5%를 넘지 못하는 밑바닥 수준입니다. 반기문 불출마의 반사이익을 안희정·황교안이 대거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면 보수는 별다른 저항없이 야권에 대권을 헌납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그렇다고 보수가 이대로 순순히 주저앉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보수, 대선 승리시 ‘손쉬운 낙승’…대선 패배시 ‘아쉬운 석패’
-87년 대선 : 노태우 36.64%(828만여표), 김영삼 28.03%(633만여표), 김대중 27.04%(611만여표), 김종필 8.06%(182만여표) / 노태우 vs 김영삼 격차 194만여표
-92년 대선 : 김영삼 41.96%(997만여표), 김대중 33.82%(804만여표), 정주영 16.31%(388만여표), 박찬종 6.37%(151만여표) / 김영삼 vs 김대중 격차 193만여표
-97년 대선 : 이회창 38.74%(993만여표), 김대중 40.27%(1032만여표), 이인제 19.20%(492만여표), 권영길 1.19%(30만여표) / 김대중 vs 이회창 격차 39만여표
-2002년 대선 : 이회창 46.58%(1144만여표), 노무현 48.91%(1201만여표), 권영길 3.89%(95만여표) / 노무현 vs 이회창 격차 57만여표
-2007년 대선 : 정동영 26.14%(617만여표), 이명박 48.67%(1149만여표), 권영길 3.01%(71만여표) 문국현 5.82%(137만여표), 이회창 15.07%(356만표) / 이명박 vs 정동역 격차 531만여표
-2012년 대선 : 박근혜 51.55%(1577만여표), 문재인 48.02%(1469만여표) / 박근혜 vs 문재인 격차 108만여표
87년 대선 이후 역대 대선 결과를 분석해보면 보수는 단 한 번도 쉽게 진 적이 없습니다. 대체로 승리할 때는 압승을 거뒀습니다.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vs 김대중의 격차는 193만여표 가량이었지만 보수 성향의 정주영 표까지 더하면 무려 581만여표입니다. 2007년 대선은 보수가 환희를 경험한 대선입니다. 이명박 vs 정동영의 격차는 무려 531만여표입니다. 보수 이회창을 더하고 진보 권영길·문국현을 제외하면 보수·진보의 격차는 무려 679만여표입니다. 예외는 87년 대선입니다. 노태우 vs 김영삼의 격차는 195만여표입니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의 합이 노태우·김종필의 합보다 256만여표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보수가 승리를 거둔 건 양김분열 때문입니다.
가장 주목할 대선은 2012년 대선입니다. 제3의 후보도, 진보진영의 독자출마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박근혜 vs 문재인이 정확하게 보수·진보 일대일 구도로 붙었습니다. 박근혜 vs 문재인의 108만여표 격차는 한국사회가 보수 우위의 지형이라는 점을 그대로 드러내줍니다. 더구나 당시 MB정부의 레임덕 분위기를 고려하면 보수의 대선승리는 쉽지 않았습니다. 보수·진보 양측이 일대일로 전면전을 벌이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보수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와 문재인·안철수의 불완전 단일화 역시 대선변수였지만 보수진보의 일대일 총력전 구도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탄핵역풍·공천파동에도 여당은 왜 120석 이상을 얻었을까?
새누리당이 상징하는 보수세력은 2004년 17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 번 모두 과반이 무너진 것은 물론 선거운동 과정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탄핵역풍은 듣도 보도 못한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200석 이상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결국 121석을 얻었습니다. 또 특정인 유승민을 배제하기 위한 공천파동 역시 목불인견의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20대 총선 초반만 해도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기준인 180석을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과반 붕괴에 이어 원내 제2당(122석)으로 몰락하는 치욕을 경험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사실 국회 의석수가 4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7대 국회 전체 299석(지역 243+비례 56) 중 121석(지역 100+비례 21, 40.4%)를 얻었습니다. 20대 국회 전체 300석(지역 253+비례 47) 중 122석(지역 105 + 비례 17, 40.6%)입니다. 더구나 사실상 새누리당 후보였던 무소속 복당파 7명을 포함하면 129석(43%)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의 텃밭인 영남 의석수가 야권의 심장인 호남보다 2배 이상 많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영남권 5개 시도의 전체 의석은 무려 65석입니다. 반면 호남권 3개 시도의 전체 의석은 28석에 불과합니다. 민주당 김부겸·김영춘 그리고 새누리당 이정현·정운천 등의 당선으로 지역주의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영호남은 여전히 여야의 텃밭입니다. 만일 여야가 영호남에서 각각 100% 싹쓸이를 한다고 가정하면 새누리당은 항상 플러스 30석 의석수를 가지고 총선에서 나서는 격입니다. 야권이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승리한다 해도 구조적으로 과반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과거 노무현이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이라는 무리수와 ‘개헌’ 카드를 꺼내든 것도 바로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20대 총선 정당별 지역구 득표수를 보면 보수의 위력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의석수는 민주당 110석, 새누리당 105석, 국민의당 25석, 정의당 2석으로 민주당이 1등입니다. 다만 전국 지역구 득표수 합계는 △새누리당 920만여표(38.3%) △민주당 888만여표(37.0%) △국민의당 356만여표(14.9%)로 새누리당이 1위입니다. 특히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표방했던 국민의당의 득표에서 공천파동으로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보수표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20대 총선에서 보수 지지층은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한국적 샤이 보수층의 탄생입니다.
◇‘문재인 대세론’ 언제까지? “매 앞에는 장사 없다?”
‘문재인 대세론’은 차기 대선국면에서 야권과 진보진영의 압도적 우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단어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안철수의 도전, 촛불정국의 이재명의 수직상승을 이겨냈습니다. 이후 반기문의 도전이 있었지만 문재인은 모두 이겨냈습니다. 탄탄대로입니다. 너무 잘 나가고 있다는 게 오히려 두려울 정도로 거침이 없습니다. 물론 최근 반기문 불출마 정국에서 안희정이 최대 수혜주로 떠오르면서 문재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세론은 언제까지 갈까요? 전망은 엇갈립니다. 우선 안희정의 경선승리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민주당 대선후보만 된다면 2007년 대선과 유사한 구도로 흐르면서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문재인이 반문·비문 연합세력의 극심한 검증공세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그는 5년 전인 2012년 대선과 민주당 대표 시절 혹독한 검증을 거쳤습니다. 한마디로 맷집이 세진 것입니다.
◇헌재 탄핵인용과 朴대통령 변수…보수 재결집에 새로운 국면 열린다?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차기 대선이 2007년 대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제갈공명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책사로 영입한다 해도 야권 우위의 대선지형을 구조적으로 바꾸기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임기말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의 예상대로 3월초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5월초 대선이 실시됩니다. 야권의 대선승리는 사실상 확실시되는 구조입니다.
변수는 단 하나입니다. 탄핵 확정 이후 대통령 박근혜의 거취와 보수층의 움직임입니다. 압도적인 촛불·탄핵 정국에서 숨죽였던 보수층은 최근 성난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선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에서는 설 연휴를 전후로 박근혜 대통령에 동정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보수층은 맹추위를 뚫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헌재의 탄핵확정을 전후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선지형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범여권의 상당수 전략가들은 현재의 지지율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헌재의 탄핵 확정 이후 어떤 식으로든 보수가 재결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더구나 박근혜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청와대를 떠나거나 사법적인 단죄를 받는 모습 등등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될 경우 파장이 어떤 식으로 확산될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진보진영과 야권 지지층이 탄핵확정에 열광할수록 보수 지지층의 상대적 반발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브렉시트·트럼프·총선’ 빗나간 여론조사…‘샤이 보수층’ 과연 없나?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론조사는 많은 불신에 휩싸여 있습니다. 영국의 유렵연합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참패 등등. 여론조사 결과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 역시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론조사는 단순한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거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총선의 경우 예측불허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결과를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대선은 총선보다 변수가 단순하기 때문에 예측치가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샤이 보수층’ 존재 여부도 논란입니다. 지난해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 5% 수준으로 폭락했을 당시 이른바 ‘샤이 박근혜’(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대통령의 숨은 지지층)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면서 샤이 박근혜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차기 대선국면에서 과연 샤이 보수층이 없다고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보통 응답률 5∼10% 수준의 여론조사는 이른바 ‘샤이 보수층’의 표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여론조사 참여를 거절하거나 참여해도 본인의 표심을 숨기는 ‘샤이 보수 경향’이 있을 것(54.2%)이라는 응답이 ‘없을 것’(33.9%)이라는 응답보다 20%p 가량 높았습니다.
이번주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의 여야 차기주자 다자구도 지지도를 살펴보면 야권이 압도적입니다. 문재인과 안희정만 더해도 50%에 육박합니다. 리얼미터에서는 야권과 진보 주자의 합계가 70%에 육박합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야권과 진보주자의 합계는 60%를 넘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역대 대선이나 총선에서 보수는 쉽게 진 적이 없습니다. 만일 차기 대선이 여야의 보수진보 일대일 구도라면 정권교체 가능성은 99.99%입니다. 그러나 차기 대선은 3자 구도 이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양분 속에서 보수의 재결집은 필연적 수순입니다. 물론 3자구도에서도 진보진영의 승리가 가능성은 높지만 일대일 구도처럼 낙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는 2007년 대선 당시 보수처럼 압승을 거두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희망하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87년 대선의 재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보수는 차기 대선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그냥 무너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