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백혈병 이겨내고 무대로 돌아간 여고생

예고 입학 후 백혈병 진단, 조혈모세포이식 등 치료 마치고 올해 복학
소아청소년 백혈병, 힘든 치료과정에 좌절하기 쉽지만
한국무용 배움 열정으로 여느 환자보다 빠르게 학교생활로 돌아가
  • 등록 2024-12-17 오전 9:35:11

    수정 2024-12-17 오전 10:02:59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급성백혈병으로 중환자실 입원 치료까지 했었던 한국무용 전공 여고생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무사히 마치고 무대로 돌아갔다.
세연이(왼쪽), 올해 선화예고 50주년 기념 예술제 무대 공연 오른쪽에서 두 번째(맨뒷줄)가 세연이.(사진=뉴시스)
세연이(선화예고 1학년)는 지난해 5월 무용 실기수업 중 갑자기 평소보다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어려서부터 준비해 오던 중, 중학생 때 발목 부상으로 전공을 한국무용으로 바꾸게 된 세연이는 너무 열심히 연습하여 몸이 힘들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 후 받게 된 학교 건강검진 결과에서 백혈구 수치가 높다는 말에 급하게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급성림프모구백혈병으로 진단되었다. 검사 결과 최고 위험군에 해당되어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골수 내에서 림프구계의 백혈구가 미성숙 상태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다 증식하고 정상적인 조혈기능을 억제하여 발생하는 악성 혈액질환으로, 20세 이하 백혈병 환자들의 약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항암치료만으로도 완치가 되지만, 세연이처럼 백혈구수가 수십만이 된 최고 위험군 환자는 조혈모세포이식도 필요하다.

집안 모두 건강했기에 백혈병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진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반중학교에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할 만큼 무용을 잘 했고, 긴 시간동안의 연습도 매일 빠지지 않고 해왔으나 건강에 이상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루 종일 무용복을 입고 연습을 해서 피부가 붉게 올라왔다고만 생각했었지, 백혈병 증상 중 하나인 점상출혈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결국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휴학을 하게 되었다.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전, 동생처럼 지냈던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소리죽여 우는 세연이를 지켜보는 온 가족은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입원기간 예술고등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예술제 무대에 서지 못한 채 세연이는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투병 생활 동안 곁을 늘 지켜준 가족과 “세연이 너라면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곁에서 격려해 준 친구들이 힘든 치료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세연이는 올해 초, 이식 후 면역억제요법을 하던 중에 다시 신입생이 되어 1학년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이식 후 최소 6개월까지는 여러 위험으로 학교생활이 어렵지만, 세연이의 배움을 향한 강한 의지에 가족도 의료진도 최선을 다했다. 꿈에 그리던 학교 예술제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 개교 50주년 공연은 물론 국립극장 공연까지 마쳤다.

그리고 이식 13개월째인 올해 12월 13일 실시한 5번째의 마지막 골수검사 결과 암세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다.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이렇게 학교에 빨리 복귀한 아이는 처음이라는 의료진들의 놀라운 시선을 뒤로 하고, 어느덧 세연이는 2학년 진급 전 발표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백혈병을 치료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못했다는 세연이의 엄마는 학교에 돌아갔을 뿐 아니라 건강을 되찾아 공연까지 하게 된 지금의 하루가 마치 기적과 같다고 한다. 특히 학교에 돌아오도록 애써주신 선화예고 모든 선생님들과, 공연까지 직접 방문하며 치료의 전 과정에 진심을 다한 의료진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치료받는 동안 매일 좌절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때가 많았지만,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주니 힘내면 좋겠어요.”라며 투병 생활 중인 환아들에게 응원의 말을 시작한 세연이는 “치료해주신 의료진 분들, 휴학할 때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라며 여러모로 도와주신 선생님들, 학교생활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한 살 어린 동생들에게도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팠던 아이가 건강하게 복학한 모습을 보며 힘을 얻게 되었다는 혈액병원 윤희성 전문간호사는 “치료를 잘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저희에게는 보람이자 큰 선물”이라며, “세연이의 한걸음 한걸음을 응원하고 늘 기도하겠습니다.”며 건강을 기원했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낙균 교수(주치의)는 “소아청소년기 급성백혈병은 많은 경우 치료가 가능해져 ‘불치병’은 아니지만, 힘든 치료과정에서 좌절하고 학교에 다시 복귀할 때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세연이의 의지와 가족의 따뜻한 지원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 후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며,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터인데, 이를 극복하고 선화 50주년 동문 무용제라는 뜻 깊은 무대에서 친구들과 멋진 공연을 보여준 세연이를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어요. 백혈병을 치료하는 많은 친구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멋지게 성장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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