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피했지만 사실상 식물대통령…개혁과제 물거품 우려

“책임총리제는 위헌” 野, 매주 탄핵 표결 예고
국민적 저항·전방위 수사 압박에 국정도 올스톱
4대 개혁 좌초 불가피…사상 첫 준예산 가능성도
  • 등록 2024-12-08 오후 4:06:26

    수정 2024-12-08 오후 4:06:26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가까스로 탄핵을 면했지만 앞날은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재차 약속했지만, 야당은 하야·탄핵·즉각 체포 말고는 다른 대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라 퇴진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기에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전국 각지에서 국민적 비난 여론이 폭발하고 있는데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전방위 압박 수사로 사실상 남은 임기 동안 손발이 묶인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정 ‘질서있는 퇴진’ 입장 되풀이…성사 가능성 낮아

한 대표는 8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지만, 향후 구체적인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하진 못했다. 당정 총책임자인 두 사람은 ‘윤 대통령의 직무 배제’, ‘질서있는 조기 퇴진’, ‘국정 공백 최소화’를 약속했지만, 이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평가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여권에서 거론되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책임총리제다. 이는 한 총리가 국정 운영의 중심이 돼 내치(內治)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다만 책임총리제가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인 용어에 불과한데다 대통령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국무총리의 권한과 책임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헌법 87조 1항과 3항에는 각각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라고 적혀 있있다. 이처럼 국무위원 구성 등에 대한 권한이 나열돼 있지만, 사실상 이를 제대로 이행한 적은 없다.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는 비록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국무총리를 임명하거나 해임이 가능한 만큼, 내각 구성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은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86조 2항에도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이라고 명시돼 있다는 점도 권한 이양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임기 단축 개헌이나 거국 중립내각 등 대연정과 같은 방식도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사실상 원포인트 개헌이나 내각 인사 추천에 대해 야권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달 10일 정기국회가 마무리된 이후 즉각 임시회 소집 일주일 단위로 끊어 탄핵안 재발의와 표결을 이어가기로 했다. 탄핵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높아진 상황에서 소장파 여당의원이나 친한동훈계에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책임총리제에 대해 “한 총리가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는 것은 헌법상 불가능하다”며 “헌법을 무시하고 나라를 비정상으로 끌고 가자는 위헌적, 무정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의 탄핵소추안 무산 직후 “국민의힘은 주권자를 배신한 범죄정당이다. 대한민국의 최악의 리스크가 된 윤석열씨를 반드시 탄핵하겠다”며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에는 이 나라를 반드시 정상으로 되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법안 좌초·외교 고립 우려도…“서둘러 퇴진해야”

윤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앞으로 경제와 외교, 민생 분야에서도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계엄 후폭풍에 여·야·정 협의가 무기한 중단되면서 내년 예산안이 사상 초유로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의료)을 비롯해 원전 생태계 복원,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부동산 공급 확대,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 등도 추진 동력을 잃거나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도 추동력을 잃고 무산될 위기다. 특히 민간 분야나 기업의 숙원이었던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법) △상속세제 개편안 등 조세특례법 등을 합의 처리할지도 미지수다.

외교·국방 분야에서도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한 대표는 이날 한 총리와 회동 이후 “윤 대통령은 퇴임 전까지 외교를 포함한 일체의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정상회담 추진에 난항을 겪으면서 고관세 이슈,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에서 한국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예정됐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방한도 물 건너가고, 최근 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협의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윤 대통령은 내란죄 수사도 받게 될 전망이다. 헌법상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지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는 제외된다. 경찰은 이날 비상계엄을 건의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전격 체포한데 이어 국방부 장관 집무실을 전격 압수수색을 했다. 향후 수사 진행에 따라 윤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이나 한남동 관저에도 압수수색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정이 질서 있는 퇴진을 제시했지만 여론의 불만이나 야권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일단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수용하고 잠시라도 면죄부를 받은 이후 임기 마무리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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