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육두문자, 잔혹한 폭력 ‘마초이즘’

  • 등록 2008-03-20 오후 1:53:14

    수정 2008-03-20 오후 1:53:14

[경향닷컴 제공] ‘숙명’ 언론시사회가 열린 지난 17일 서울 용산CGV에서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두 주연 배우 권상우·송승헌의 일본 여성팬들이 플래카드를 내걸고 화환을 보낸 것이다. 극장 복도를 가득 채운 화환 리본에 ‘대박을 기원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흥행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육두문자가 다량 들어있는 대사, 비열한 캐릭터, 잔혹한 폭력 묘사를 여성팬들이 좋아할지는 의문이다.

▲ 영화 ‘숙명’의 한 장면

조직의 밑바닥에서 우정을 다져온 네 친구는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함께 카지노의 돈을 털려던 이들은 철중(권상우)의 배신으로 계획을 성사시키지 못한다.
 
우민(송승헌)은 죄를 뒤집어쓴 뒤 철창에 갇힌다. 우민이 출소한 2년 후 세상은 달라졌다. 철중은 조직의 중간 보스가 됐고, 도완(김인권)은 마약에 빠져 심신이 망가졌다. 영환(지성)은 친구들의 반목을 잠자코 지켜본다. 우민과 철중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인다.

여성 관객의 취향, 생각 같은 것은 개의치 않겠다는 듯 ‘숙명’은 2시간여의 상영시간 내내 남성 호르몬 과잉 상태를 유지한다. 남녀 관계는 대체로 남자의 일방적인 완력과 협박에 의해 유지된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하나같이 “오빠”라고 부른다.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유흥업에 종사한다.

권상우가 가끔 의외의 코믹한 대사들을 선보이긴 하지만, 잔뜩 힘이 들어간 관객의 어깨와 눈빛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다.

극중 대사처럼 ‘숙명’의 세계는 ‘복마전’이다. 표면적으로 송승헌이 주인공, 권상우가 악역이지만 모두가 그저 거칠고 가련한 밑바닥 인생일 뿐이다. 등장 인물 중 어느 한 명에게 정붙이고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김해곤 감독은 “인간들의 가소로움과 그 가련한 투쟁에 가슴 가득 연민과 위로를 머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루한 삶의 밑바닥을 가감없이 드러내겠다는 의도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음악 속에 쉽게 파묻힌다.

어떤 관객은 ‘숙명’을 보면서 케이블TV에 흔히 나오는 짤막한 영상물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조폭이 주인공이고, 그의 여자는 가련하고, 누군가가 배신하고, 또 누군가는 죽는 뮤직 비디오 말이다. 이런 뮤직 비디오의 정서와 ‘숙명’의 차이점을 쉽게 설명해줄 사람은 누굴까.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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