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대우조선 2조 손실의 오해와 진실

분식회계 아니라 '빅 배쓰'일 가능성…금융당국 "감리 당장 진행 안한다"
증권업계 애널들, 4년째 현금 안들어오는데도 '매수' 의견 제시
"조선사 투자자들, 손실 돌변할 수 있는 '미청구공사' 증가 여부 반드시 확인해야"
  • 등록 2015-07-16 오전 11:02:16

    수정 2015-07-16 오후 2:49:02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잠재 손실 규모가 2조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주주 산업은행은 그동안 뭘 했느냐는 책임론도 거론되고 있지요. 지난해까지 당기순이익 흑자 행진을 이어왔던 회사가 갑자기 2조원대 손실이라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회계전문가들은 우선 올해 2분기 재무제표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섣부른 얘기라고 설명합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대우조선의 재무제표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를 살펴보곤 있지만 분식회계에 대한 감리를 당장 진행할 근거는 없다”고 밝힙니다. 아니 2조원대 손실을 감췄다는데 감독당국은 왜 이렇게 태연한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사나 건설사와 같은 수주기업의 회계처리 방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사는 벌크선 한 척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제조업체처럼 ‘100원짜리 10개 팔면 1000원’ 이런 식으로 매출액을 계산하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 조선사 매출은 `0원`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조선사들은 발주처로부터 수주받은 금액에서 프로젝트 진행률을 계산해 매출액으로 인식합니다. 1000억원 규모 제작을 수주했고 프로젝트를 30% 가량 진행했다면 매출액을 300억원으로 계산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조선사는 프로젝트를 30%까지 진행했다고 했는데 발주처가 보기엔 20%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고 옥신각신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는 발주처가 인정한 20%만큼만 매출채권으로 잡고 나머지 인정받지 못한 10% 금액은 미청구공사로 잡습니다. 시간이 흘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미청구공사는 결국 발주처에 청구해 받을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하니까 매출액으로 봅니다.

만약 프로젝트 현장 상황이 나빠져 제작 기간이 지연되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 프로젝트 진행률이 당초 예상보다 떨어진다면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돌변합니다. 대우조선이 해양플랜트 제작 지연으로 손실을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료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연결 재무제표 기준.
대우조선은 지난해말까지 만해도 7조3959억원이라고 했던 미청구공사가 1분기만에 9조4149억원으로 불어납니다. 실제로 현금이 들어오지도 않는데 일단 매출액으로 잡은 미청구공사가 계속해서 늘어왔던 거죠. 순이익은 흑자라도 현금흐름은 수년째 마이너스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하지만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초에도 역시나 “대우조선은 업계 유일한 실적 개선 조선사”라며 ‘매수’ 의견을 불러댔습니다. 이들 눈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청구공사와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가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보이지도 않았나 봅니다.

결론적으로 대우조선은 분식회계라기보다는 신임 경영자가 임기 초반에 반영해야할 손실을 모두 털고 나가는 빅 배쓰(Big bath)일 가능성이 큽니다. 5억원 주고 산 아파트 시세가 4억원으로 떨어졌다면 1억원 손실을 언제 반영해야할 지에 대한 차이이지요. 이는 손실 반영 시점의 문제일 뿐 분식회계는 아닙니다.

다만 대우조선이 의도적으로 ‘적자 수주’ 프로젝트에 대한 예상 손실을 그동안 반영해오지 않았다면 대우건설(047040) 사례와 비슷한 분식회계 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대규모 손실을 감춘 대우조선과 이를 바로잡지 못한 감사인은 금융당국 징계를 받게 되겠지만 아직 그럴 가능성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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