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냉대와 새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겨울, 집에서 쫓겨나 서울로 돈 벌러 간 어머니를 찾으러 무작정 상경했다. 낮에는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생활을 이어갔다.
어려웠던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시작한 사업은 화물 중개업이었다. 단돈 1000원을 쥐고 건설업에 뛰어든 그는 이후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성실함으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그는 30대 중반 대전ㆍ충남지역 3위 건설업체인 대아건설, 2003년에는 당시 국내 도급 순위 28위인 경남기업을 인수해 세간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결국 11개 계열사 연매출 2조 원대 대아그룹-경남기업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생에 다시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정치권에 뛰어들면서부터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 비례대표로 나섰지만 고배를 마신 뒤 회사자금 횡령을 통해 만든 비자금을 정당 후원금으로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순간 뒷돈을 통해 모든 걸 해결하려 했다가 기업을 망가뜨리고 목숨까지 잃었다.
1965년 마쓰시다 회장이 고희가 지난 후 총수에 오르자 한 직원이 물었다. “회장님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셨습니까”
그러자 마쓰시다 회장은 “나는 하늘로부터 세 가지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네.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 배운 것이 그것일세”라고 답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시작도 마쓰시다 회장과 비슷했다. 그러나 최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마쓰시다 회장은 여전히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성완종 회장은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성완종 전 회장의 인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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