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먹은 책, 집창촌 걸레 '작품'이 되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 '한계와 조건'전
강석호·김도희 작가 이색적인 작품 선보여
13일까지
  • 등록 2015-12-09 오전 9:53:15

    수정 2015-12-09 오후 12:29:42

강석호 ‘트렌스-소사이어티 13’(사진=진화랑)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흰개미가 갉아먹은 책, 집창촌 내 폐가를 청소한 흔적 등이 작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13일까지 여는 ‘한계와 조건’전은 흰개미를 5년간 직접 사육하면서 작업 해온 강석호(35) 작가와 한 달여간 서울 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 집창촌 내 폐가를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김도희(36) 작가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예술과 생물학의 경계…강석호 ‘트랜스 소사이어티’

강 작가는 5년전 흰개미의 습성과 사육방법을 연구한 뒤 옛책들을 구입해 흰개미들의 터전을 책 안에 만들어주었다. 책이나 나무를 갉아먹고 사는 흰개미들에게 새로운 거주지를 제공한 것이다. 흰개미들은 약 1500만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동안 흰개미들은 자신만의 사회를 이루며 책을 파먹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고 흰개미가 살면서 갉아먹은 책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조형물로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한 ‘트랜스 소사이어티’(Trans-Society) 프로젝트에 대해 작가는 “흰개미가 구멍을 뚫고 산다는 건 정말 희소한 가능성”이라며 “흰개미라는 자연, 생물, 사회이기도 한 존재와 인간의 사고, 정보를 담은 기록물이자 문명의 압축판인 책이라는 물질을 그냥 던져 놓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아닌 마치 과학자나 생물학자의 연구 프로젝트와도 같았던 작업의 결과물들은 다행히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런던 사치갤러리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주목 받았고 올초 일본 도쿄아트페어에서는 작품이 팔리기도 했다.

김도희 작가의 전시전경(사진=진화랑)


△쾌락과 환멸의 한풀이…김도희 ‘뿌리 퍼포먼스’

속칭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서울 월곡동 집창촌의 10년 이상 방치된 건물에 들어간 것은 우연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시꺼멓게 재만 남은 건물을 한달여 동안 청소 했다. 주변의 ‘이모’와 ‘삼촌’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새수건을 주고 헌수건을 받아 빈 건물을 계속 닦아냈다.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고 사진으로도 남겼다. ‘예술가의 작업’에 주변의 시선도 차츰 누그러졌다.

전시장에는 집창촌 폐가를 청소할 때 쓴 걸레 수십개를 걸어놨다. 붉은 조명에 걸려 있는 걸레들은 도발적이고 중의적이다. 영상작품에는 작가가 청소하는 모습을 담았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시각’에 매여있는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예술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란 생각에서다.

결국 실험적인 퍼포먼스로 방향을 틀었다. “예술가가 관람객들에게 추상적 개념의 나열이나 가상의 스펙터클을 도피처로 제공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실제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고민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작가 스스로 몸으로 구현해낸 작업의 과정은 당혹스럽지만 예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되묻는다.

진화랑은 “두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한계와 조건’에 스스로 다가가 치열하고 치밀하게 작업에 매진했다”며 “이들의 작품에는 한계를 이겨냄으로써 걸러진 맑은 잔재가 주는 위안이 있고 복제할 수 없는 독창성이 있다”고 평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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