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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에서 아들을 잃은 노(老) 시계공은 시간을 되돌리고픈 마음을 담아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다. 이 시계가 역사(驛舍)에 걸리던 날 벤자민(브래드 피트)이 80세 노인의 육체로 태어난다. 아내가 벤자민을 낳다가 죽자 아버지는 그를 양로원 앞에 버린다. 벤자민은 그곳에서 노인들과 함께 살며 자라난다(점점 젊어진다). 그는 주름살투성이이던 12살 때 6살짜리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를 만난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육체는 각자 반대방향에서 성숙해져 간다.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잘못됐다. 벤자민 버튼에게 거꾸로 가는 것은 육체일 뿐 시간이 아니다. 점점 젊어지는 그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의 모든 장기(臟器) 중 뇌만 유일하게 어리게 태어나 늙어간다. 그렇기에 벤자민은 60대의 몸으로 험난한 선원의 길을 택하고 20대의 강인한 육체를 가졌으나 중대한 결정 앞에서 신중하다. 그의 시간을 지배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헤어졌다가 40대에 다시 만나 격렬하게 사랑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 고통받는 쪽은 자꾸 어려지는 벤자민이다. 젊은 벤자민이 늙어가는 데이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겉모습만 그럴 뿐이야" 밖에 없다. 한 생명(엄마)을 죽이고서야 또 다른 생명(벤자민)이 태어나듯, 삶이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시간이 갈수록 늙는다는 것은 바람이 불고 풀이 눕는 것과 같다. 채근담이 일깨워준다. "이 몸이 태어나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또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라. 갖은 생각이 재처럼 싸늘해지고 본성은 고요해져 스스로 초연할 것이다."
·어긋나는 삶과 사랑의 고전적인 해석. 시간의 마디는 어긋나 있다는 〈햄릿〉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상용·영화평론가
·허리케인 같은 감독이 만든 흐르는 강물 같은 인생의 우화.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