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상생 어디가고..하도급 업체가 `봉`

삼성전자 백화점식 불공정 하도급 거래..과징금 사상 최대
상생협력 대통령상 기업 `이미지 훼손`
조사 방해 하기도..전자측 반발 가능성
  • 등록 2008-02-21 오후 2:38:30

    수정 2008-02-21 오후 2:54:24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납품업체와의 상생협력을 강조해온 삼성전자(005930)가 불공정하도급거래 행위를 해오다 사상 최대 규모의 불공정하도급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 이 처분이 나오기까지 2년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삼성전자의 방해도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측의 조사 방해로 증거가 잘 확보되지 않아 과징금 규모는 오히려 적은 편이다. 삼성전자는 공정위에 여전히 부당하다는 주장을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공방의 여지도 남아 있다.

◇삼성전자, 하도급 횡포..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공정위는 지난 2005년 5월 이전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삼성전자가 5가지 유형의 불공정하도급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불공정하도급거래로 처분을 받는 기업이 많지만 이처럼 다양한 유형을 한 기업이 적발되기는 처음이다. 이경만 공정위 하도급개선팀장은 "대기업이 5가지 유형으로 처분을 받은 경우가 없다"며 "삼성전자는 규모가 큰 데다 시스템적으로 원가 절감에 나섰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원가절감 목표를 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중 절대 부분을 협력업체 납품 단가 인하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 했고 계약서도 뒤늦게 써줬다. 2003년도의 경우 원가절감 목표액은 1조7433억원이었고 이중 단기인하를 통한 목표금액이 1조2002억원에 달했다.
 
국내 협력업체 대상으로는 6397억원의 목표액이 할당됐는데 실제 6140억원이 달성됐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물량 증가를 공언했지만 물량 증가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채 단기 인하만 강행됐다.

또 부품을 발주한 뒤 납품업체는 잘못이 없는데도 자신의 생산계획이나 설계변경 등을 이유로 제품을 뒤늦게 받아 납품업체들을 힘들게 했다. 제품을 만들때 자금이 이미 들어갔는데 예상 시점에 납품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 중소업체들은 자금사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정상적으로 제품을 받아 놓고도 해당 모델의 휴대폰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거나 설계를 바꿨다는 이유를 대면서 납품대금 일부를 낮춘 사실도 적발됐다.

또 제조 공정도, 기구도면, 동작설명서 등 납품업체가 생산하는 부품의 핵심기술이 담긴 자료를 제출케 하고 납품업체의 담당자도 함부로 못 바꾸게 하는 등으로 경영에도 부당하게 간섭했다.
 
수년전부터 협력업체 사이에서는 삼성전자가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쟁 협력업체에게 해당 기술을 공개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기술을 개발해 봐야 얻는게 없다는 것이었다.

◇처분까지 2년8개월..`조사방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IT벤처분야 불공정 하도급거래 현장조사를 실시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삼성전자가 최종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2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지연된 것은 삼성전자의 조사 방해 때문이라는게 공정위측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조사 방해를 이유로 삼성전자 임원 2명에 각각 200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했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하도급거래 조사에 대비, 자체적으로 하도급 점검을 실시하고 중요한 단서가 되는 "정기 네고(NEGO), 통합 네고, 일괄 네고, 전사차원 정책적 가격지침" 등을 단가품의서 등의 자료에서 수정삭제했다.

또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가 혐의점을 발견하고 전산시스템 열람을 요구했지만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들어 거부했다. 영업기밀 보호를 감안, 2∼3개의 자료만보겠다고 했는데도 이조차 막았다. 공정거래법상 공정위 조사공무원은 전산자료 등을 조사할 수 있지만 무시당한 것이다.

이동훈 공정위 기업협력단장은 "공정위 직원들이 삼성전자 구매담당 부서에 가보니 관련 서류는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간신히 전산시스템안의 서류와 맞춰볼 수 있는 몇박스 분량의 참고 서류를 찾아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자료를 감추는 등 조사 방해가 없어 공정위가 '심증'을 '물증'으로 굳힐 수 있었다면 과징금은 100억원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었다. 이동훈 단장은 "조사 대상 기간의 행위와 관련, 과징금을 중과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상생협력 의지천명 훼손

이번 불공정하도급거래 처분에 따라 삼성전자가 그동안 쌓아온 납품업체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의 이미지도 훼손되게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력업체와 공동사업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생협력 의지 천명의 결정판은 지난 2003년말 내놓은 ‘협력업체 종합 지원책’. 
 
협력사 역시 초일류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토로 기술과 인력, 자금 등 3대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것으로 목표했다. 자금 지원 규모는 총 1조원에 달했고 협력사 대상으로 경영 노하우 전수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협력사 대표 자녀들을 선발, 삼성전자의 제조, 구매, 개발,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는 덕분에 지난 2004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 주관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전자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지난 20일 공정위 전원회의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중요 사안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향후 삼성전자측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원회의에서 업종 특성상 계약서를 늦게 준 것이 아니며, 납품업체들에게 도면 등을 받고서도 제품 품질 유지를 위해서 필요했고 또 핵심기술도 아니어서 부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가 인하에 대해서도 물량 증가를 약속하고 실행했고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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