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1100원선을 오르내리면서 산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표정들이다. 늘어나는 환차손, 원자재 수입가격 부담에 머리를 싸매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환헷지 평가손에 골머리를 앓는 기업도 있다.
반면 수출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곳도 있다. 이들도 과도한 환율상승이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하기는 매 한가지다.
상당수 기업들은 환율변동으로 원자재 수급, 수출경쟁력, 자금조달, 물가불안 등 호재와 악재가 동전 양면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면밀한 대응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괴롭다"고 말한다.
◇정유-항공업계, 환차손 부담 '전전긍긍'
원유도입, 운전자금 등으로 대규모 외화부채를 안고 있는 정유업계는 곤혹스런 모습이다.
SK에너지(096770)는 원화값이 1원 떨어질 때마다 30여억원의 환차손이 생긴다. 2분기말 기준으로 달러표시 외화자산과 부채는 각각 28억6000달러, 68억7000억달러임을 감안하면 약 40억 달러가 환위험을 안고 있다.
헷지물량을 제외하면 30억달러 안팎이 순수하게 환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회사측 관계자는 "환율변동 상황을 좀 더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만 2700여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던 S-Oil도 "이대로 가면 3분기에도 환차손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S-Oil이 3분기에만 1500여억원의 순외환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공업체들도 항공유와 항공기 임차료를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앉아서 수십억원을 떼이는 구조다.
달러-원 환율이 1100원대까지 돌파하면서 하반기 환차손 전망은 상반기보다 더 어둡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상반기에 입은 환차손은 각각 272억원과 166억원이다.
국내 최대 항공사 대한항공(003490)은 달러 수입 대비 달러 지출을 연간 20억달러 정도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연간 기준으로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200억원을 손실 본다.
아시아나항공도 마찬가지. 환율에 대한 연간 손익민감도를 보면, 연간 기준으로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외환 헤지를 하더라도 75억원의 추가 손실이 생긴다.
한편 항공업계는 여행업계와 함께 원화약세로 해외여행이 위축될까 우려하고 있다. 성수기 수요가 예년만 못하다는 한숨도 나온다.
◇조선업체, 환 헷지 평가손 곤혹
조선업체들은 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자재는 국내조달이 가능해 안도하고 있다.
환율상승이 조선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달러로 받는 선수금과 중도금 헷지 과정에서 평가손실이 커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곤혹스런 모습이다.
현대중공업(009540) 관계자는 "최근 환율 상승으로 조선업체가 전반적으로 평가손을 입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환율이라는 것은 주가처럼 오르고 내리는 것이 다반사인 만큼 그동안 헷지를 위한 선물환 거래를 통해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환율변동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도 "최근의 환율 상승은 실질적인 손해가 아니라 평가손이기 때문에 향후 수주물량과 예상되는 제품가격 상승 등을 고려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체들이 환헷징을 위해 실시했던 선물환 거래가 최근 환율상승으로 평가손을 입어 이것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며 "현금흐름은 좋으나 재무제표상에 환 관련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철강, 원자재값 부담.."수출가격에 반영해 상쇄"
철강업체들은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급등할 경우, 어려움을 겪게된다. 다만 이같은 부담을 수출확대를 통해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포스코는 제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현재 전체 생산량의 30% 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원화약세로 원료가격 상승이 불가피하지만, 원료가격 상승을 제품가격에 반영해 수출할 수 있어 환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포스코(005490) 관계자는 "철강제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를 원료 수입 물량 결제에 사용하는 내추럴헤지를 통해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 관계자도 "철스크랩 등은 수입하고 있지만 최근 H형강 등의 철강시장 상황이 좋아 자연스럽게 내추럴 헷지가 가능하다"면서 "일부 부족분에 대해서만 선물환 거래를 하고 있어 환율 상승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자, 상대적 여유.."과도한 상승 반갑지 않아"
삼성전자는 환율이 예측범위를 벗어나면 자원·자금활용에 있어 예측가능한 경영이 어려워 문제라고 밝혔다. 반도체·휴대폰 등 수출로 인해 단기간은 환차익을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차익 부분도 외자구매, 설비구매를 통한 투자비용 상승이나 재료비 상승 등 부정적 영향으로 서로 상쇄된다.
삼성전자(005930) 관계자는 "환율이 급속히 올라가면 급속히 내려가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라며 "삼성전자는 환율에 따른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중요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환헤지나 환투자가 아닌 근본적인 원가경쟁력, 비용 절감 등 사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경영계획상 기준환율을 달러당 900원대 초반으로 설정한 바 있다.
LG전자도 최근 환율급등에 시장상황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사업계획을 변경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다.
LG전자는 올해 사업기준환율인 달러당 885원은 변동하지 않고 있다. 다만, 매월 수립되는 이동계획에서 올 하반기 사업환율을 900원대 후반으로 변경, 운용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환율 상승시 원자재 수입의 경우 달러 결제를 줄이면서 다른 통화의 결제 비율을 올리고, 반대로 수출할 때는 달러 결제를 늘리고 있다"면서 "LG전자는 환율이 1원 상승할 때 마다 연간 영업이익이 약 70억원 증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10억달러가 넘는 달러부채와 관련해 외환관련손실이 발생해 부담이 되기도 한다"면서 "환율상승이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연말까지 가봐야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LG전자는 지난 1분기와 2분기중 외화부채손실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자동차, 수출 경쟁력에 우호적.."소비위축 등 예의주시"
자동차업체들은 일단 원화약세가 우호적이라는 판단이다. 수출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환율 상황이 중장기적으로 미국 등 세계 경기 부담이 될 경우 소비위축 등이 부담이다.
현대차(005380) 관계자는 "75~80% 가량을 수출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환율상승은 우호적"이라며 "그러나 달러-원 환율뿐 아니라 엔-원 환율 등 경쟁업체 나라의 통화와 상대적인 수준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보성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나아가 "수출 채산성이 좋아지겠지만 미국 유럽 등 세계시장 부진으로 수출 물량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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