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꿀벌 에이즈 이어 '美 부저병' 공포

  • 등록 2012-07-09 오전 11:52:59

    수정 2012-07-09 오전 11:52:59

【무안=뉴시스】 ‘꿀벌 에이즈’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이 멸종 위기로 내몰린 가운데 이번에는 꿀벌의 유충을 폐사시키는 미국 부저병(腐蛆病)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농가들이 전염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농가들은 “시위만으로는 대책 마련이 어렵다”며 집단 소송에 나섰지만, 원인이 명확치 않은데다 정부도 직접 보상이 가능한 자연재해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美 부저병 확산

2군 법정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 ‘토종벌 괴질’인 반면 3군 전염병인 부저병은 한봉, 양봉 가리지 않고 발생해 체감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부저병은 꿀벌의 애벌레나 번데기가 벌집에서 세균에 감염돼 썩는 병으로, 한 번 발생한 곳에서는 40년간 벌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지난달 26일 ‘토종벌 미국 부저병 발생주의보’를 발령했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322군(群·1군 벌통 4~7개·꿀벌 2만-3만 마리)이 감염됐고, 이 가운데 56%인 182군이 전남에서 발생했다.

한국토봉협회 전남도회 관계자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꿀벌농가가 초토화된 마당에 부저병까지 덮치면서 한봉에서 양봉으로 전향한 농가들마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사육 의지가 바닥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비법정 전염병인 블랙퀸셀바이러스와 석고병까지 기승을 부려 농가들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전남 구례군한봉협회 회원들이 6일 오전 구례군 문척교 둔치에서 토종벌 집단폐사에 따른 농업재해 보상을 촉구하며 벌통을 소각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5월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전체 벌통 2만여군(群) 대부분이 폐사해 50억여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전남 꿀벌 98% 괴멸…집단 소송

낭충봉아부패병에 따른 전남 농가 피해율은 무려 98%. 2009년 강원도에서 발병사례가 첫 확인된 후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한때 9만1000군에 달했던 전남지역 토종벌은 현재 1800군만 남았다. 피해액도 231억원에 이른다.

목포와 완도, 진도, 신안을 제외하고는 죄다 피해를 봤고, 지난해까지 청정지대였던 강진도 올들어 낭충봉아부패병과 부저병이 동시에 발견되면서 토종벌 명품화사업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농민들은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다’며 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곡성 300농가를 비롯, 1000여 농가가 소송에 동참했다.

토종벌 집단 폐사에 따른 정부의 직접 보상을 촉구하는 소송으로 보상 요구액은 토종벌 가치와 예상 소득, 벌통 소각처리비 등을 합쳐 1군당 51만 원 가량이다.

◇원인 미궁-정부 난색 ‘걸림돌’

꿀벌전염병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고온다습한 기온, 월동기 이상고온, 꽃이 늦게 피는 환경적 요인, 휴대전화 전자기파의 영향 등 추론은 맞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이런 가운데 농가들은 꿀벌도 다른 가축처럼 살처분 대상에 포함시켜 정부의 직접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고, 재해로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질병으로 인한 집단 폐사는 불가항력적 농업재해고, 과수와 원예 농가의 2차 피해도 심각한 만큼 피해 보상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의 입장은 시종일관 “어렵다”는 반응이다. 날아다니는 곤충인 데다 소·돼지와 같은 가축, 닭·오리 등의 가금류와 달리 피해 개체수를 계량화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정부는 지난해 낭충봉아부패병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고 방역강화와 함께 사육비, 기자재, 방역약품 지원 등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 농가는 “토봉으로 연간 3억원의 수입을 올리다 괴질로 모든 것을 잃은 뒤 업종도 전환했지만 빚만 늘고 있다”며 “전체 농가의 98%가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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