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을 저버린 혁명이 정당할까요?

‘바더 마인호프’
  • 등록 2009-07-24 오후 4:12:00

    수정 2009-07-24 오후 2:03:12

▲ 영화

[경향닷컴 제공] 혁명을 위해 인륜을 저버릴 수 있습니까.

이번주에는 상영시간이 150분에 달하고, 제작비는 독일 영화 사상 최고인 2000만 유로(약 355억원)가 투입된 영화가 개봉합니다. 현재 독일 영화를 대표하는 마르티나 게덱(<타인의 삶>), 브루노 간츠(<베를린 천사의 시>) 등이 출연했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울리 에델이 연출했습니다. 가히 독일 영화계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 <바더 마인호프>는 어느 독일인도 재론하고 싶어하지 않을 법한 독일 현대사의 음울한 구석을 직시합니다. ‘반성’과 ‘자기 성찰’에 능한 독일인의 장기를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요.

1967년 이란의 전제군주 팔레비 샤가 독일을 방문하자 진보적 시민들은 항의 시위를 벌입니다. 이 와중에 시위대 한 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혁명을 꿈꾸는 청년 안드레아 바더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급진 좌파 조직을 구성합니다. 여기에 이들을 취재하던 좌파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가 합세해 조직은 현대사에서 가장 과격한 혁명 집단 ‘적군파’로 거듭납니다.

이들은 현대 사회의 모든 고루한 질서로부터 ‘해방’을 추구합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반대하고, ‘경찰국가’ 독일에 항의합니다. 이를 추동하는 자본주의 체제, 일부일처에 근거한 가족 제도 역시 타도의 대상입니다. 조직 내의 남녀는 거리낌없이 나체로 활보하고, 마음이 맞으면 누구하고나 자유롭게 사랑합니다. 당대 독일 사회의 권위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던 젊은이들도 암묵적으로 적군파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과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들은 강한 충격을 노린 나머지 백화점에 불을 내고, 은행 강도가 되고, 요인을 암살하고, 언론사에 폭탄 테러를 하고, 비행기 납치까지 합니다.

특히 문제삼을 부분은, 인간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보편의 법칙마저 어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부녀였던 마인호프는 남겨진 두 아이를 포기하다시피 합니다. 바더는 조직에 새롭게 합류하려는 변호사에게 시험 삼아 옆 자리 노부인의 지갑을 훔쳐오라고 요구합니다. 비록 ‘적’의 휘하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을지언정, 보수적인 출판 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테러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지를 두고서는 조직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물론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법칙조차도 사실은 절대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식인, 근친상간에 대한 개념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우리 논의의 대상은 ‘지금, 여기’의 윤리입니다. 악당의 만행, 경찰의 폭력에는 물론 분노가 치밉니다. 그러나 베트남의 민중이 불에 타 죽는 사이, 후방의 미군의 팔 다리를 폭탄으로 찢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이미 세워진 법칙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심해야 하지만, 그러한 법칙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궁리해야 합니다. 몸을 따라가지 않는 머리는 무력하고, 머리보다 앞서는 몸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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