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권의 해석/ 천 권의 설명을 떠나는 것처럼 떠난다/ … / 나는 아내에게 푸른 하늘의 편지를 쓴다/ 무식하게/ 그리움이 외로움이라고/ 외로움이 그리움이라고 쓴다”(`편지`).
이제 곧 여든 살. 일흔여덟의 노시인이 사랑의 시를 썼다. 53년 문학인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절절한 사랑고백을 한 상대는 그의 아내다. 시집은 시인 고은이 28년을 같이 산 아내 이상화 중앙대 영문과 교수에게 바치는 시 118편을 묶은 것이다.
시집에선 30년 시인 부부의 세월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일상에서 피어오른 생각들을 보이고(`아내의 퇴근` `임신`), 하루하루 얻어낸 소박한 행복감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저녁 요구르트` `계산`).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생긴 아쉬움이 큰 만큼(`국제전화` `다시 국제전화`), 아내를 세상에서 떠나보낼 날의 형상이 가슴 아프다(`무덤`).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시인이 사랑에 웃고 우는 모습은 익숙지 않다. 독자의 불편함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노시인은 사랑고백을 꽤나 즐기는 듯하다. 과연 처음인가 싶다. 50년 시인의 관록이라 보기도 어렵다. 범부의 순수함이 더 크게 보이는 탓이다.
|
올해 5월5일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아내 상화가 시인에게 내주었다는 시 두 편 중 한 편을 시집의 첫머리에 세웠다.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불쑥 묻지 말아요/ … / 이 행성의 한 점에서/ 내가 당신에게로 갈 때/ 이 행성의 한 점에서/ 당신은 내게로 온 것이에요”(이상화, `어느 별에 왔을까`). 행성에서 시작됐을 지난한 그 사랑이 비로소 온전히 시인 부부의 것이 된 듯하다.
▶ 관련기사 ◀ ☞주식은 왜 팔고 나면 오를까 ☞"사귀자"…남자엔 과제, 여자엔 친밀감 ☞[책꽂이] 내 농장은 28번가에 있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