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처럼 파란만장… ‘영원한 2인자’ JP의 삶과 죽음

김종필 전 총리, 향년 92세로 서거…군사쿠데타서 시작한 40여년 정치인생 마무리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합종연횡…“DJP연합, 수평적 정권교체 기여”
9선 국회의원에 총리만 두 번… ‘처세의 달인’ 비난도
3김 시대, 종언… 남겨진 지역주의·보스정치 ‘구태’ 잔재 청산해야 할 과제
  • 등록 2018-06-24 오후 5:20:14

    수정 2018-06-24 오후 5:20:14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한국 현대사의 풍운아. 한국 현대사의 거목.

별칭처럼, 향년 92세로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지난 생을 되짚다보면 현대사의 주요사건을 차례로 마주하게 된다.

‘정치는 허업’이란 말로 40여년 정치인생을 마무리했지만,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 시대’를 풍미했던 김 전 총리가 한국정치에 남긴 족적은 때론 반면교사, 때론 타산지석의 교과서로 후세에 남게 됐다.

파란만장한 삶… 개국공신이었지만 박정희정권서도 2차례 망명

김 전 총리는 1926년1월7일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나 공주중·고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35살 육군중령이던 1961년 그는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하면서부터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개국공신이지만 박정희정권에서만 두 번 망명길에 올랐다. 중앙정보부 부장을 거쳐 1963년 공화당 창립에 앞장섰다가 새나라 자동차 사건 및 파친코 사건 등의 주역으로 몰려 첫 망명길을 떠났다. 곧 귀국해 같은해 6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고 공화당 의장에 올랐지만, 한·일 국교정상회담 당시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알려지면서 굴욕외교 당사자로 지목돼 1964년 다시 망명을 떠났다. 이후 1971년부터 75년까지 4년6개월간 국무총리를 지냈다.

1979년 10.26 사태로 신군부가 등장하면서는 정치적 핍박을 당했다.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압류당하고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 건너가기도 했지만 1986년엔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35석을 얻으며 ‘충청 맹주’로 떠올랐다. 같은 해 13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득표율 8%로 노태우, YS, DJ에 이어 4위에 머물렀다.

YS·DJ와 합종연횡하며 3당 합당, DJP 연합… ‘영원한 2인자’로 은퇴

이후 그는 YS, DJ와 합종연횡하며 한국정치판을 뒤흔들었다. 다만 대권은 잡지 못한 채 ‘영원한 2인자’로 남았다.

1990년 민주공화당 총재였던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민주정의당), YS(통일민주당)와 함께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1992년 14대 대선 땐 YS를 당선시켰고, 그는 민자당 대표가 됐다. 그러나 3당 합당 때 합의한 의원내각제가 지켜지지 않자 1995년 민자당을 나와 자유민주연합을 새로 만들어 1996년 15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1997년엔 국민회의를 이끌던 DJ와 연합해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DJ는 15대 대통령이 됐고, 그는 국무총리에 올랐다. 1년6개월 동안 다시 ‘만인지상 일인지하’, ‘2인자’의 재상으로 살았다. 그러나 역시 약속했던 내각제 개헌이 무산되고 대북관계에서도 충돌하면서 ‘위태로운 동거’는 깨졌다. 자민련은 이미 2000년 16대 총선에서 17석만 얻어 세가 급속히 줄어든 상태였다. 이듬해 ‘햇볕정책 전도사’인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에 자민련이 찬성하면서 DJP 연합은 무너졌다.

자민련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동참 후폭풍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참패, 4석만 건졌다. 김 전 총리는 비례대표 1번으로 10선에 도전했지만, 저조한 정당득표율로 실패했다. 그가 자민련 총재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선언한 때다.

정계는 떠났지만 이후 주요 정치이벤트가 벌어질 때엔 보수 대표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고, 2017년 대선 때엔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난으로 ‘비토’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매년 보수정당 대표, 충청권 정치인 등은 신년인사차 그를 예방했고, 2013년에는 그의 아호를 딴 ‘운정회’ 모임이 생기는 등 정치원로로서 예우 받았다.

엇갈리는 평가…‘독재 부역자’ vs ‘현대사 주역’

김 전 대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진행형이다. 군부쿠데타에 가담하고 박정희정권에서 민주주의 억압에 앞장선 ‘독재정권의 부역자’라는 혹평이 쏟아지는 한편, 첫 수평적인 정권교체에 기여한 ‘현대사의 주역’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념적 지향이 서로 다른 YS, DJ와도 각각 손잡았던 모습엔 ‘처세의 달인’이란 조롱과 ‘타협의 정치가’란 호평이 공존한다. 다만 김 전 총리의 별세를 끝으로, 한국 현대정치를 지배했던 ‘3김 시대’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2015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유명을 달리했다. YS, DJ 그리고 김 전 총리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함으로써 그들이 남긴 지역주의, 계파·보스정치라는 ‘구태’정치의 잔재를 확실하게 청산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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