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TV홈쇼핑·대형마트 유통벤더 '갑질' 조사

정재찬 "유통벤더 실태 파악중..적발 시 엄중 제재"
납품업체 상대로 재고·택배비·판촉비 떠넘기기 심각
"대형마트 자율점검도 철저히 평가"
  • 등록 2016-10-21 오전 11:01:02

    수정 2016-10-21 오전 11:01:02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1. A 제조업체는 TV홈쇼핑 유통벤더의 요청에 따라 홈쇼핑 판매용 상품 수십 개를 생산했다. 하지만 유통벤더는 “방송이 중단돼 판매를 못하게 됐다”고 A 업체에 일방 통보했고 이 업체는 재고 상품을 모두 떠안게 됐다.

2. 홈쇼핑에 처음 입점한 B 업체는 홈쇼핑 PD, MD(상품기획자)로부터 “방송 진행, 일정 조율을 고려해 유통벤더를 통해 거래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특정 유통벤더를 이용하지 않으면 황금시간대에 편성되지 못하는 불이익을 우려해 이 업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수용했다.

3. 홈쇼핑에 입점한 C업체는 택배비, 사은품 비용 등을 떠안게 됐지만 홈쇼핑 거래가 끊길 수 있어 유통벤더에 항의조차 못했다.

납품업체와 TV홈쇼핑·대형마트 간에 중간도매상 역할을 하는 유통벤더들의 이 같은 갑질 행태가 잇따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서울시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홈쇼핑상품공급자협회, 납품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대형유통업체-유통벤더-납품업체로 이어지는 중층 거래구조에서 아직도 납품업체의 고충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통벤더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 행위 적발 시 엄중 제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8월부터 유통벤더를 통한 납품관계가 많은 TV홈쇼핑과 대형마트 분야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거래실태 파악에 착수했다”며 “예비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법 위반 혐의가 있는 업체들을 선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납품업체가 대형유통업체와 직접 거래할 경우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유통벤더는 대형유통업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유통벤더가 납품업체에 갑질을 하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해도 해당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납품업체를 보호하겠다”며 “유통벤더가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점을 이용해 대형유통업체들이 이들을 규제회피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또 “대형 유통업체들이 유통벤더의 불공정거래를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도 마련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월 이갑수 이마트(139480) 대표, 김상현 홈플러스 대표,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 이상식 농협하나로유통 대표는 내년 1월부터 문제가 심각한 유통벤더의 경우 재계약 심사 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정 위원장은 “이러한 자율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철저히 점검·평가해보겠다”며 “불공정거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TV홈쇼핑 등 다른 업체까지 이를 확산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표준거래계약서 개정 등 납품업체 대표들의 건의사항에 대해서도 “애로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필요 시 직권조사 등을 통해 불공정 거래 관행 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통벤더는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납품업체 관리나 MD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중간도매상이다. 유통벤더는 대형유통업체가 아니어서 대규모유통업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사진=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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