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팀엔 한국을 대표할만한 에이스 투수가 있었다. 헌데 그 투수의 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타선이 크게 터지는 날이 아니면 승리를 따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의 기사에는 언제는 '불운'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녔다.
시즌이 끝나 갈 때쯤 그 투수에 대한 감독의 평가는 "우리나라 최고"에서 "제 몫은 해주는 투수"로 조금 떨어졌다. 에이스가 겪은 스트레스는 감독의 아픔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팀은 4강 레이스에서 시즌 막판 탈락하고 말았다. 에이스의 불운이 꼭 그만의 탓이었을까.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의 경기 운영방식이었다. 에이스가 마운드에 오르는 날이면 부쩍 신인급 선수들의 기용 빈도가 높아졌다. 그 날이 오면 평소 감독이 점찍어 두었던 유망주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작전도 과감했다. 평소 번트를 꽤 애용하는 스타일의 감독이었다. 그러나 에이스가 나오면 번트나 도루 등을 시도하는 것 보다 타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 투수가 번트 수비에 강하다는 이유로 수비 포메이션도 크게 바꾸지 않았다.
에이스가 등판한 날이라고 짐짓 여유를 보인 것이 문제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또 '이길 확률이 높은 날'이라는 가정하에 평소 주저했던 일들을 과감히 시도했었던 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에이스 혼자서 경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비의 뒷받침은 물론이고 적절히 점수를 뽑아줘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에이스라고 해서 매 경기 1점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무실점 경기를 해도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야구다.
윤석민이 등판하는 날이면 유독 타선이 더 터지지 않는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KIA는 윤석민이 등판한 13경기 중 3회 이전에 모두 7번 선두타자가 출루했다. 많은 수치는 아니다. 크게 떨어진 공격력을 반영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진루 성공률은 더 떨어졌다는 점이다. 7번 중 단 한차례만 희생번트가 나왔고 나머지는 강공이었다. 강공을 택했을 때 안타와 몸에 맞는 볼이 한차례씩 나와 2번만 진루에 성공했다. 득점까지는 모두 이어지지 않았다.
윤석민이 거둔 4승 중 3승이 5회 이전 득점(3회 이전은 2승)에 성공했을 때 나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KIA와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는 팀은 두산이다. 에이스 리오스의 듬직함은 두산이 선두 경쟁을 펼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두산도 시즌 초반 리오스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40일 전만해도 최하위에 처져 있었다.
반대로 패한 3경기서는 2차례의 선두타자 출루시 두차례의 강공이 모두 실패하며 득점에 이르지 못했다.
두산은 5월 이후 리오스와 타선이 동반 상승곡선을 그리며 강력한 선두권팀으로 변신했다.
에이스가 나온 날 많이 이기지 못한 팀은 시즌 성적에서 큰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길 확률이 많은 날을 우선 이겨둬야 그렇지 못한 날의 승리를 더해 4위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스가 이기지 못하면 연패가 길어지거나 연승을 이어가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결국 시즌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다.
초반 득점에 관한 부분만 언급했지만 투수 교체도 보다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에이스라도 때로는 빨리 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에이스의 승리는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스가 나온 날'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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