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살`을 둘러싼 불신들..현대차 노사 해법은

  • 등록 2011-06-13 오후 1:39:05

    수정 2011-06-14 오전 12:12:21

[이데일리 이창균 기자] "내가 지금 자살해도 사측에서는 똑같은 말만 할 걸요? 회사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죽은 거라고"

지난 10일, 전날 정규직 노조 노동안전위원 박모(48)씨 자살로 라인 가동이 전면 중단됐던 현대차(005380) 아산공장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한 조합원은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초 노조는 숨진 박씨의 유서 내용을 근거로 들며 "사측이 타임오프(노조전임자 근로시간면제)제 적용을 빌미로 박씨의 정상적인 노조 활동도 무단 이탈로 간주해 무급 처리하는 등 노동자 권리를 탑압했고, 이는 박씨를 자살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사측은 "박씨의 근태 처리는 노사간 합의됐던 산업안전보건위원 규정에 따라 이뤄졌고 노조 활동을 탄압한 일이 없다"며 "박씨의 자살은 가정사 등 개인적인 문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먼저 떠나간 망자(亡者)는 말이 없는 법.  남겨진 이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맞게, 고인의 사인(死因)을 특정 방향으로 부각하거나 혹은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자살은 복잡한 선택이다. 단지 어떤 `이유 하나만`으로 이를 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의 죽음이 얽힌, 이번 사안에 대해 기자로서 노사 어느 한쪽 말이 옳고 한쪽 말은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다만 현장을 취재하며 우려됐던 것은, 현대차 노사 양측이 가진 불신과 반목의 `골`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사측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경영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 목숨을 중요치 않게 여긴다", "귀족노조라는 논리를 뒤집어 씌우는데, 다수는 잦은 주말 특근에 가족들 얼굴 볼 틈도 없이 `일하는 기계`로 살아갈 뿐"이라는 게 근로자들의 목소리였다.     회사 측도 노동자들에게 할 말은 많았다. 노조의 액션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사측 관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늘 이렇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산공장 한 관계자는 "이처럼 독단적으로 파업을 벌인 다음, 생산 중단 기간에 대해 유급 처리를 해달라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고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불신감을 드러냈다.

결국 조업중단 사태는 약 14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화 끝에 11일 새벽 4시께 양측이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함으로써 해결됐고 생산라인 가동도 재개됐지만, 노사 모두 이번 일로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의 감정만 재확인한 셈이 됐다.

노사 갈등이라는 팩트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건강한 사회는 갈등, 마찰, 대화와 타협, 이해, 융합 등의 절차가 순차적으로, 혹은 얽혀가며 만들어진다. 노동자의 조합 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무노조의 산업 현장보다는, 갈등이 있더라도 대화와 해결 기회를 모색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훨씬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노조를 인정하되, 포용할 여지를 남겨두는 현대차 특유의 기업 문화는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도 재확인한 것처럼 현대차의 노사 갈등이 상호 불신에 의한 `감정 싸움`으로만 치닫고 되풀이된다면, 그 같은 순기능조차 기대할 길이 없게 된다.   더욱이 올해 임단협을 진행 중인 현대차 노사가 이번 일로 감정 싸움의 연장선을 갖게 될 경우, 전체 업계에 미칠 악영향은 차곡차곡 누적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를 떠안는 건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명분은 퇴색되고 반감만 심해질 뿐, 노사로서도 득 될 것이 없다.

노사가 어떤 경우든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서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는 갖고, 이를 통해 상호 성숙할 수 있는 `합리적 노사 갈등 문화(?)`를 확립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조업은 재개했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긴 지금의 현대차 노사에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심이 필요해 보인다. 상대방을 `믿지만 싸우는 것`과 `믿지 못해 싸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만에 풀릴 일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그래도 되묻고 싶다. 과연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불신을 극복할 해법은 없는 걸까.

▶ 관련기사 ◀ ☞현대차, 체코법인 10월부터 30만대 생산 ☞현대차 "소외계층의 공연 관람 후원해요" ☞해비치재단, 다문화가족 교육센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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