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11년만에 현대家 품으로

현대重, 오일뱅크 경영권 분쟁 1심서 승소
옛 현대家 재건 가속화
  • 등록 2010-07-09 오후 12:03:30

    수정 2010-07-09 오후 7:16:32

[이데일리 전설리 기자]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가(家)가 외환위기 속에서 중동에 넘겼던 현대오일뱅크를 11년만에 되찾게 될 전망이다.

9일 현대중공업(009540)이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와 벌인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분쟁에 대해 법원이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판결이 1심이긴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제중재법원의 결정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어서 향후 IPIC가 항소한다 하더라도 최종심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 현대重-IPIC `지리한 법정공방`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확보한 IPIC측은 2억달러 규모의 우선배당권을 갖는 대신 배당 수령이 종료되면 현대중공업 등 현대측에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기회를 주기로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IPIC는 2004년∼2006년 3년간 1억8800만달러의 배당금을 챙긴 뒤 2007년부터 배당금을 받지 않으면서 경영권을 유지해오다 2007년 제3자에 대한 주식 매각을 시도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2008년 3월 "IPIC가 옛 현대 계열 주주와 체결한 계약을 위반했다"며 국제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1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국제중재재판소는 "IPIC측이 주주간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지분 70%(1억7155만7695주)를 시장가격보다 싼 주당 1만5000원에 현대측에 양도하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IPIC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정이 한국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얻기 전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며 중재 결정 이행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현대오일뱅크의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자동차(005380), 현대제철(004020) 등 현대측은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 IPIC를 상대로 현대오일뱅크 주식매각 강제집행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는 이날 IPIC에 "국제중재법원 중재판정에 따르라"며 원고 승소 판결하고, 판결의 가집행도 허가했다.

한편 IPIC는 한국 법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 3월말 주주총회에서 자사에 623억원을 배당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현대중공업이 법원에 낸 주주총회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배당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 1심 판결, 최종심까지 간다

IPIC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아직 판결문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현재로서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며 "법원의 판결문 내용을 신중히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IPIC측이 항소한다 하더라도 최종심까지 판결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판정 결과가 국내 법원 소송에서 뒤집힌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1심 판결이 최종심까지 유지된다면 현대측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현대오일뱅크 지분 30%를 포함해 10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IPIC의 항소 여부에 관계없이 이달 중 현대오일뱅크 주식 매입자금 2조5734억원을 IPIC에 지급하거나 법원에 공탁하는 등 경영권 확보를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또 IPIC가 주식을 인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해 추가적인 법적 조치도 검토중이다.

◇ 옛 현대家 재건, 속도 낸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할 경우 사업 다각화는 물론 옛 현대가 기업을 복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말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했다. 여기에 현대오일뱅크마저 인수하게 되면 옛 현대그룹 재건의 밑그림이 상당 부분 완성되는 셈.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는 과거 현대그룹의 일원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최근 달아오르고 있는 현대건설 인수전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현대건설 인수 후보군으로는 현대차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게 되면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도 현 8위에서 7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자산은 40조1000억원 수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 자산이 45조7000억원으로 늘어나 GS그룹을 제치고 포스코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 신영씨의 아들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 대표를 맡은 바 있으며 최근 현대종합상사 인수와 함께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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