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전시회장. 강신익 LG전자 사장이 기자들 앞에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러나 기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과연 그게 가능하겠냐"는 회의적 반응도 나왔다 "언젠가는 잡을지 몰라도 올해 소니를 잡겠다는 건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강 사장의 발언이 현실화하는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1분기 LG전자는 평판TV와 브라운관TV를 합한 전체 TV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세계 2위 소니를 눌렀다.
상승세는 2분기에도 이어졌다. 소니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LCD TV에서도 처음으로 역전에 성공한 것. 소니를 잡은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LG전자 임직원들은 "실력으로 입증했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 LG, LCD TV에서 처음으로 소니 잡다
LG전자(066570)가 상반기 세계 LCD TV 시장에서 눈부신 실적을 올렸다.
지난 상반기 세계 시장에서 총 674만대의 LCD TV를 판매, 작년 같은 기간의 456만대보다 무려 48%나 판매량을 늘렸다.
상반기 11.9%의 점유율을 기록, 11.5%에 그친 소니를 사상 처음으로 제치고 2위에 등극했다.
2분기 성장세(2008년 236만대 → 2009년 355만대, 51% 증가)가 1분기(2008년 221만대 → 2009년 319만대, 44% 증가)보다 높아 판매 확대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LCD TV의 선전 덕분에 전체 TV사업을 담당하는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는 영업이익 2236억원과 영업이익율 5.0%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TV 사업은 급격한 판가하락과 모듈가격의 변동으로 지난 2007년 44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영업이익은 156억원.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에는 전통의 강자 소니를 누르고 전체 TV 매출에서 7분기 만에 세계 2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지난 1분기 29억 4000만 달러(매출 기준 점유율 13.3%)의 TV 매출을 올려 28억 9천만 달러(13.1%)에 머무른 소니를 추월했다.
LCD TV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선전했다. 양대 선진시장인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판매량을 각각 44%와 12% 증가했다.
아시아, 중남미, 중국, 중동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는 100%에 가까운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LG전자 TV 사업의 약진은 `세계경제가 침체되더라도 선진시장의 세컨드TV와 신흥시장의 브라운관TV 교체 수요는 그리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중소형 TV 시장을 공략한 것이 적중한 결과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LG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기 전인 작년 6월부터 경기 침체기에 적합한 중소형 제품군을 보강했다.
또 해외업체들이 저가로 밀어부칠 때 대형 프리미엄 제품 위주 전략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에 따라 국내 구미공장의 경우 월 25만대를 생산했던 LCD TV 생산라인을 지난 1월부터 풀가동해왔다. 3월 들어서는 잔업을 통해 월 생산량을 30만대로 확대했다. 유럽(폴란드)/북미(멕시코) 공장도 90% 이상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LCD TV 단일 모델로 100만대 돌파
LG전자는 지난 3월 LCD TV 단일 모델로만 100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밀리언 셀러`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4월 유럽시장에 출시한 32인치 LCD TV 제품 (모델명:32LG3000ZA)이 출시 11개월 만에 판매량 100만대 고지에 오른 것.
LG전자가 지난 99년 LCD TV 사업을 시작한 이래 단일 모델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전자제품의 테스트 마켓으로 볼 수 있는 유럽 시장에서, 까다로운 유럽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 고급화 전략이 밀리언 셀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TV 전면의 스피커 대신 화면 전체에서 울리는 입체음향을 느낄 수 있는 `인비저블 스피커`와 영화 속 대사가 또렷하게 들리는 `클리어 보이스` 등 최고의 사양을 적용했다.
사용자 환경(User Interface)도 기존 리스트 방식 대신 휴대폰과 같은 아이콘 방식으로 바꿔 사용하기 편리한 TV라는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얇은 외관 외에도 TV작동 상태를 알려주는LED(발광다이오드) 조명 등을 더해 디자인 측면에서도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 대화면 PDP TV 시장서도 인기몰이
LG전자는 PDP TV 분야의 경우 영화와 스포츠 경기에 강한 50인치 이상 대화면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했다.
지난 1분기 세계시장에서 총 18만대의 대형 PDP TV를 판매해, 지난해 1분기 13만대에서 판매량을 38%나 늘렸다. 1분기 세계 시장에 판매한 PDP TV 3대 당 1대 꼴로 50인치 이상 프리미엄 제품인 셈이다.
북미와 서유럽,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각각 1분기 5만대의 대형 PDP TV 판매고를 올리며 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
신흥시장인 중남미와 중동/아프리카, 동유럽에서도 판매량을 각각 두배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해외 시장의 성과는 국내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올해 1월 출시한 PDP TV 간판 모델인 보보스 시리즈는 4개월 만인 5월말까지 판매량이 5만대에 육박하며 상반기 최고 히트 제품으로 부상했다.
보보스 신제품의 경우 50인치 제품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훌쩍 넘은 57%를 기록, 한국시장에서도 50인치 대형 PDP TV가 대세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는 신제품 인기로 금액 기준으로 국내 PDP TV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는 수량과 금액 기준에서 모두 1위에 올라섰다.
이 제품의 특징 중 하나는 어느 곳에서 봐도 마치 한 장의 유리가 벽에 걸려 있는 듯한 싱글 레이어(Single Layer) 기술.
50인치와 60인치 대형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PDP TV의 특성상 거실 인테리어와의 조화가 제품 구매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는 고객 조사를 반영한 결과다.
한편 LG전자는 내년 이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LED TV시장에서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50만대에 이어 내년에는 500만대의 공격적인 판매목표도 세웠다.
강신익 사장은 최근 "TV 구매기준인 화질과 디자인의 정점을 겨냥한 제품으로 LED LCD TV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며 "내년에는 500만대의 LED LCD TV를 판매해 시장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 강신익 사장 "SCM 경쟁력 높여라"
LG전자에서 TV사업을 이끌고 있는 강신익 HE사업본부장 사장(사진)은 2007년 TV 사업을 맡은 후 ▲제품 리더십 ▲마케팅 ▲SCM(공급망관리) 등 속도경영 등 3가지 측면에서 경쟁력을 탄탄히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다.
판매량 확대보다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는게 미래를 위해 우선되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SCM 고도화는 강 사장이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다.
그가 SCM을 강조하게 된 것은 그만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 취임 초기 강 사장은 고객의 주문에 납기를 맞추지 못해 주문 취소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 SCM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고객 주문에서 생산, 납품까지의 체계를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쳤다.
판매를 담당하는 영업점과 생산현장,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가 하나로 연결된 시스템을 통해 고객은 어떤 제품을 주문하더라도 3일내 제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예년보다 늘어난 물량을 사전에 공급하고 유통업체의 추가주문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면서도 적정 재고 관리에 성공했다는 것이 LG전자 설명이다.
일례로 한국에서 구매해 유럽까지 가는데 40일 이상 걸리던 자재를 현지에서 직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꿔 유럽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또 폴란드 생산공장에서 판매법인을 거쳐 고객에게 배송되던 물류 프로세스를 생산공장에서 고객에게 바로 가도록 했다.
가격 하락이 가파른 TV 사업의 특성상 `재고는 곧 손실`이라는 인식으로 유통재고를 최소화했다.
SCM 기법이 고도화됨에 따라 생산방식도 세분화됐다. 주문량이 큰 수출용 제품은 흐름라인으로, 이외 제품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셀라인 방식으로 하루하루 필요량만 생산하게 된 것.
LG전자 관계자는 "강 사장의 지시로 RFID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 LG전자와 협력업체의 생산부터 재고 관리까지 RFID를 활용해 공정상의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유통망으로 RFID 시스템을 확대하는 시점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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