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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북미간 사전 조율에서는 긍정적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협의를 진행하고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생산적인 협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는 달라진 흐름이 감지된다.
비건 방북서 北·美, 구체적 논의 진행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의 초기 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 중에서도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과거핵, 곧 핵탄두와 이를 미국까지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 북한이 어느 수준까지 폐기 의지를 드러내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비건 대표의 방북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준과 방식,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및 체제 보장을 아우른 전반적인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양측이 ‘통큰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주춧돌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북미 실무협상은 뭘 주고,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그런 협상이라기보다는 서로가 뭘 요구하는지 구체적으로 빠짐없이 터놓고 이야기하는 유익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영변 핵시설 외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플루토늄·우라늄 농축시설 등 다른 핵시설의 폐기와 핵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신고 및 검증도 미국이 원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비건 대표는 한국에 오기 앞서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비욘드 영변’(영변을 넘어서)이라는 표현으로 북한 핵프로그램 전반까지 폐기 대상을 넓혔다. 알려지지 않은 핵시설까지 포괄적 신고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요구 수준 높이는 美, 北에 상응조치도 높이나
미국이 ‘비욘드 영변’을 바라본다면 북한이 미국측에 요구할 상응 조치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이 과거핵은 물론, 현재핵과 미래핵까지도 협상 테이블에 꺼내놓는 순간, 북한으로선 제재완화와 체제보장 등 더 높은 수준의 상응 조치를 반대급부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 오는 17일부터 북미간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만큼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조치를 완화하는 우회적 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을 통한 석유 공급 제한량을 늘리고 북한 노동자 ‘귀환령’을 풀어 북한 경제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방식이다. 남북 경협사업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 국제금융기관들의 북한에 대한 자금지원 카드도 활용할 여지가 있다.
경제적 조치 외 정치적으로도 북미간 외교관계 정상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 추진 등도 거론된다. 특히 연락사무소는 추후 비핵화 사찰 과정에서도 필요한 기구인 데다 이미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설치에 합의했던 전례가 있어 상응조치로 제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로드맵에 대해서까지 합의하려면 미국도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으로 유연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