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이번 여름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면 더더욱 느린 여행이 필요한 시기다. 새소리, 바람 소리, 풍경소리, 불자들의 불경 소리만 들릴 뿐. 산사의 하루는 마음이 이끄는 데로, 발길이 멈추는 데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내기 아주 좋은 장소다. ‘나를 위한 행복여행 템플스테이’를 신청하지 않아도 해인사 품에서는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떠나보자.
가야산 국립공원 깊숙한 곳에 해인사가 있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양옆으로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반가운 듯 도로 옆을 따라온다. 에어컨 보다 시원한 바람에 창문을 내리고 천천히 해인사의 품으로 들어간다. 연신 입에서는 “참 좋구나, 시원하다”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구불구불 휘어진 계곡 길 옆에는 하늘 향해 뻗은 곧은 소나무와 멋진 바위들이 문지기 역할을 하듯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전히 좋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팔만대장경을 향해 걸어간다. 가는 길목에 선재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의 여유도 부려보자. 느린 여행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오래 머물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일주문에서 봉황문으로 가는 길에는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천년 노목을 지난다. 제3문인 해탈문까지는 일주문에서 33계단을 거치는데 이는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한다.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은 수행 및 예불 공간이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해인사 가장 깊숙한 곳까지 와야 장경판전이 있다. 모두 4개의 동으로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두 개의 문화재가 있다.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리는 고려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것으로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이다. 이 대장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목판 보관용 건축물이 장경판전인데 자연환경을 가장 과학적으로 적용한 건축물로 손꼽힌다. 삼보 사찰인 해인사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세 가지 보물인 불보(석가모니 부처님), 법보(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 승보(부처의 말씀을 수행한 큰스님)가 있는 사찰 중 한 곳이다.
사찰의 규모만큼이나 해인사 곳곳에 숨은 쉼터도 많다. 장경판전 주변 한적한 소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면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자. 스르르 부는 바람에 걱정은 날아가고 향긋한 솔 향기만 가득할 것이다. 해인사 장경판전과 대장경을 감상하기 좋은 추천 코스가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 계단 수다라장 중앙 통로 수다라장 동쪽 동사간판전 법보전 동쪽 법보전 법당법보전 서쪽과 서사간판전 장경판전 뒤쪽 언덕으로 이동하면 된다.
해인사 백련암(白蓮庵). 해인사 암자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해인사 올라가는 우측으로 경사가 높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0여 분 이동해야 백련암에 도착한다. 백련암 주차장에서 우측, 가파른 돌계단이 보이는 일주문으로 올라가자. 일주문을 지나 감로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점령당 계단을 오르면 부처님 얼굴을 닮은 불면석을 만나게 된다. 암자 좌우에는 용각대, 절상대, 환적대, 신선대로 불리는 바위들로 백련암을 지키는 호위 무사처럼 늠름해 보인다.
이곳 고심원에는 성철 큰 스님의 좌상이 모셔져 있다. 살아생전 스님이 기거했던 염화실도 있다. 스님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예외 없이 3,000배를 하고 난 후 만났다고 한다. 성철 스님의 유명한 법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과 가르침을 주었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不欺自心(불기자심)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일상의 번뇌를 잠시 벗어두려 백련암을 오간다. 적광전 내 석가모니 삼존불 앞에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불자들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인사 매표소 가기 전 우측 구원리 마을에 산정 갤러리가 있다. 2001년 10월에 갤러리를 오픈한 후 2006년 10월에 별관을 만들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화백 부부인 장윤진, 정선희 씨다. 서양화가 정선희 씨가 관장을 맡고, 남편인 장윤진 씨는 동양화 연구소를 운영한다. 두 화백의 작품은 전시회를 통해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도 가능하다. 이 공간은 느린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다.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정원, 자연 그늘이 되어 주는 소나무, 계절 꽃이 핀 갤러리는 넓진 않지만, 두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화가가 설명해 주는 작품 이야기에 쏙 빨려 들어간다. 자연과 사람에 관한 화가의 특별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갤러리 옆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다도의 즐거움도 나누며 정답게 담소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직접 담근 차와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고, 차값은 별도로 정해진 것은 없으나 좋은 만큼 내면 된다. 산정 갤러리는 체험 코스를 운영 중이다. 한국화 그리기, 천연 염색체험은 사전 예약으로 가능하다.
해인사는 가야산 국립공원 내에 있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가야산 삼정 야영장과 치인 야영장에서는 계곡에 내려가 발 담그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가야산 국립공원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