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술은 마신 후 대리기사에게 운전을 맡긴 A씨. 차 안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대리기사는 온데간데없고 차는 도로 한복판에 사고가 난 채로 서 있었다. 황당한 상황에 일단 차부터 옮길 요량으로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차는 꿈쩍도 안 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이 떠오르는 이 상황. 과연 A씨는 음주운전이 맞을까?
|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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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지난 2016년 1월의 어느 새벽, 경남 창원시에서 발생했다. A씨는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신 후 대리기사를 불러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A씨가 부르지 않은 또다른 대리기사 다가와 김해시에 있는 A씨 집까지 대리운전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A씨는 이 대리기사를 믿고 차 안에서 잠이 든다.
A씨가 다시 눈을 뜬 시간은 새벽 3시께. 편도 3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정신을 차린 A씨는 운전석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A씨는 차량을 옮기려고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은 뒤 엑셀 페달을 밟았지만 사고로 인해 움직이지 않았다.
검사는 A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다. 얼핏 술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려 했으니 도로교통법 상 음주운전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검사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관건은 ‘A씨가 실제로 차량이 움직였느냐’였다.
1심 재판부는 “시동을 걸고 기어를 조작하고 액셀을 밟는 행위는 운전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고 음주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실제로 자동차를 이동했을 때 음주운전의 위험성이 현실화된다”며 “음주운전죄가 실행됐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장애미수 또는 불능미수에 해당하지만 해당 법령에서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즉, 음주상태에서 운전을 시도해도 실제로 차량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음주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검사 측은 즉각 항소에 나섰지만, 2심 재판부 역시 동일한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법원의 판단은 일관됐다.
대법원은 “‘운전’이란 자동차를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애초부터 자동차가 고장 등으로 발진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운전이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