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누구의 주머니가 털리고 있나

  • 등록 2008-03-19 오전 11:47:17

    수정 2008-03-19 오후 2:16:36

[이데일리 안근모기자] 요동치는 최근의 글로벌 금융·경제 현상에 관해 잣대에 따라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텐데, 기자는 지난 수년간 회자돼 왔던 '세계경제 불균형'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봤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헐값으로 돈을 빌려 잔치를 벌였던 미국 경제가 이제 빚 탕감 잔치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말에 우리가 그랬듯이 그 매개는 환율, 즉 달러화 가치의 절하이지만 그 방식과 충격은 가히 폭력적이다. 미국은 기축통화 국가이니까.

먼저, 무역부문에서 미국을 향한 거대한 부(富)의 이동이 진행중이다.

미국에 수출해서 먹고 살았던 일본과 유럽 등이 달러약세에 따른 원자재값 급등을 못이겨 자국 통화의 절상을 용인하고 있다. 대미 수출국들을 상대로 한 미국의 이른바 근린 궁핍화(近隣窮乏化, beggar my neighbor) 정책을 결국 받아들인 것이다. 대미 수출국들은 이제 미국에 덜 팔고, 미국에서 더 사가야 한다. 대미 수출국들의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부(富)는 이렇게 해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자재 생산국(특히 산유국)들이 막대한 커미션(commission)을 챙기고 있다. 수출국들의 '부'를 미국뿐 아니라 원자재 생산국들도 나눠 가지는 구도다. 대미 수출국들은 지금 이중으로 털리고 있다.

자본부문에서도 부의 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약한 달러'는 미국의 대외채무 탕감을 의미한다. 1000만원을 빌려줬는데 물가가 두 배로 뛰었다(돈 가치가 절반이 됐다) 치자.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지 자명하다. 즉 달러화의 추락은 미국에 막대한 돈을 빌려준 아시아 국가들의 채권(債權) 가치가 곤두박질 치고 있음을 뜻한다. 반대로 달러를 찍어 헬리콥터로 뿌리고 있는 미국은 실질 채무부담이 갈수록 줄고 있다.

그럼에도 채권국들은 미국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는 대외 거래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무역으로 피땀흘려 쌓은 재산을 속수무책으로 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6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대외채권) 가치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에, 최근 환율급등에 힘입어(?) 경상거래 쪽에서는 손실이 덜하다. 원화가 달러에 대해서도 약세이기 때문에 단순히 봐서 미국에 무역으로 손해 보는게 없다. 여타 경쟁국에 대해서는 우리가 크게 유리한 입장이다. 대신 원자재 생산국에게는 우리도 털리고 있다.

우리나라 내부를 들여다 보자. 역시 최근 환경변화로 손해를 보는 쪽과 득을 보는 쪽이 뚜렷이 갈린다. 부(富)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불리하다. 원자재값과 환율 급등의 이중 불똥을 물가를 통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필품 지출비중이 높은 중산 서민층의 충격이 특히 크다.

살림이 넉넉한 계층은 생필품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고통이 덜하다. 부자라고 라면을 두세배씩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형차를 두 세대씩 굴리는 집은 고통이 더욱 덜하다. 정부가 유류세를 10%나 내려준 덕이다. 올 가을에는 전기요금까지 내려준다니 더더욱 좋다. 국민 공동의 재산인 세금과 공기업 이익이 부유한 소비계층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기업들 중에서는 당연히 수출하는 회사가 덕을 보고 있다. 대신 수입회사나 내수 업종은 어렵다. 온 금융시장이 난리를 치지만, LG전자(066570) 주가는 이달 중에만 16% 올랐다. 반면, 대표적인 내수기업인 신세계(004170)는 이달 들어 6.3% 떨어졌다. 해외 원자재에 의존하는 내수업종인데다 가격인상은 커녕 인하방침까지 세워진 공기업 한국전력(015760)의 주가는 올해 들어 29%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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