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님, 저 바보 아니에요"…고유정이 '믹서기·곰탕솥' 산 이유

  • 등록 2020-06-18 오전 9:40:03

    수정 2020-06-18 오전 9:40:03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살해 정황에 대해서는 줄곧 변명으로 일관했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은 지난 17일 오후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왕정옥)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전 남편의 사망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며, 의붓아들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거듭 호소했다.

이날 고유정은 “피해자(전 남편)를 만나기 전 믹서기와 휴대용 가스버너 등을 왜 샀냐”는 왕 판사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가 물건을 한 번에 사는 습관이 있어서 여러 개의 조리도구를 사게 됐다. 곰탕솥도 친정어머니가 쓸 수 있다 생각해 구입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에서 언급된 물품은 고유정이 전 남편인 강모(사망 당시 36세)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품들이다.

앞서 검찰은 고유정을 검거한 후 흉기와 믹서기, 휴대용 가스버너, 곰탕솥 등을 계획적 살인의 증거품으로 확보한 바 있다.

고유정은 믹서기에 대해서는 “홈쇼핑에서 구입했는데 (현) 남편이 퇴직금을 받아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요리솜씨가 있는 걸 알고 조리를 맡을 경우를 대비해 구입했다”고 부연했다.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이에 왕 판사가 “물품을 범행에 사용했냐”고 재차 묻자 고유정은 “절대 그것들을 범행에 사용하지 않았다. (검거 당시) 차안에 각종 물건이 많았던 것도 내가 차를 (현) 남편과 싸운 후 일종의 안식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그동안 전 남편 살해가 ‘우발적’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당시의 상황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특히 당시 고유정은 수박을 자르던 상황이라고 했지만, 범행 현장에는 수박이 잘리지 않은 채 그대로인 상태로 발견된 것에 재판부는 의문점을 품었다.

고유정은 이에 대해 “당시 전 남편이 (성) 접촉을 시도해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아이게 내일 아침에 먹자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검찰은 고유정의 연쇄살인을 입증하는 데 공판의 초점을 맞추면서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잔혹해 피고인에게 사형만으로는 형이 가벼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아들 앞에서 아빠(전 남편)를, 아빠(현 남편) 앞에서는 아들을 살해하는 천륜에 반한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2월 1심 결심공판에서도 “피고인은 반인륜적 범행을 두 차례나 저질렀다”며 사형을 구형했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전남편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계획적 범죄로 인정했지만, 의붓아들 살인사건은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고유정은 최후 진술에서 “검사님, 저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닙니다”라면서 “법원이 다 알고 있는 면접교섭권이 진행되는 동안 나보다 힘이 센 사람(전 남편)을 흉기로 죽일 계획을 세우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전 남편이 원하지 않는 (성) 접촉을 해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붓아들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고유정에 대한 항소심 선거공판은 7월15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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