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곳곳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떠돌고 있다. 청정지역이었던 경북, 영남권에서 AI 의심사례 신고가 나오는 등 AI 사태는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초동대처에 실패했던 정부는 뒤늦게 경계단계를 ‘심각’ 단계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살처분 외에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상황이어서 속수무책이다.
살처분 규모 1800만마리에 육박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살처분 매몰 규모는 313개 농가, 1467만9000마리에 달한다. 아직 25개 농가 337만6000마리의 살처분이 예정돼 있어 살처분 규모는 1800만마리를 넘어설 전망이다.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지난 2014년 195일동안 1396만 마리가 도살처분 된 것과 비교해 피해규모가 얼마나 더 확산될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대처방식과 비교하면 우리 정부가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보다 늦은 지난달 21일 일본 돗토리현에서 철새 분변에 AI바이러스가 나오자마자 일본 정부는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전면 방역에 들어갔다. 현재 닭 55만여마리, 오리 2만여마리가 도살 처분된 이후 아직까지 별다른 피해 확산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은 “일본은 AI가 발생하면 매뉴얼대로 바로 움직이는데 반해 우리는 매뉴얼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처하는데 상당히 시일이 늦다”고 말했다.
AI 양성판정을 받은지 24시간내 도살 처분이 이뤄져야 하나 제때 이뤄지지도 못하고 있다. 도살 처분 인력이 부족해서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의 해명이지만 탄핵 정국에서 나타난 국정공백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AI사태는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에 따른 인재”라면서 “초기 검출 및 방역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여건에서 대규모 살처분만 매년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마땅한 대책 없는 정부…백신 투입 여전히 선 그어
‘심각’ 단계에서는 정부가 AI백신 접종도 고려할 수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김재수 농림부 장관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조류에 대한 백신 접종은 하지 않고 주로 매몰이나 살처분을 통해 확산을 막고 있다”며 “행정비용, 부작용, 실천가능성 등을 종합할 때 현시점에서는 맞지 않다”고 했다. 부화 후 한달쯤 출하되고 마리당 가격이 소나 돼지에 비해 낮은 가금류에 백신을 투입하면 가격 경쟁력이 낮다는 것도 백신 투입을 주저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또 백신 접종을 병행하게 되면 사실상 ‘AI상시발생국’으로 전락하고 ‘AI청정국 지위’를 잃게 되는 것도 선택의 폭을 좁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안일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0~20년 주기로 AI가 발생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3년째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베트남처럼 백신을 투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살처분 대책 방식만 고집하다보면 AI를 잡을 수도 없거니와 살처분 규모가 커질 경우 축산안정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AI 발생 빈도나 확산 속도를 봤을 때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한시적으로 빨리 백신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닭이나 오리를 수출하는 나라도 아닌 상황에서 청정국 지위라는 것은 중요한 것도 아닌 만큼 정부가 한시적으로 백신을 사용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피해를 조기에 잡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