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오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나는 음악을 틀며 추모를 조롱하고 방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야권뿐만 아니라 박 시장이 발 디딘 범민주·시민사회계에서도 성추문 의혹을 두고 고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시민운동가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이자 유력 대권주자의 사망을 두고 벌어진 풍경은 한국 사회의 국론 분열이 얼마나 극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서울시葬 반대”…집행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10일 서울시가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5일장으로 진행한다고 밝히자 바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12일 현재 53만명이 참여했다. 심지어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10일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상대로 ‘서울특별시장 집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시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고인의 성추행 의혹을 겨냥, 서 권한대행 등을 업무상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방조죄로 경찰 고발했다.
“애도” “조롱” 조문객 사이서도 극단적 반응
이러한 극단적인 반응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1~12일 이틀 내내 ‘통곡·눈물’과 ‘조롱·비난’이 교차했다. 상당수 조문객들은 눈가를 훔치거나 한동안 분향소 쪽을 바라보는 등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청 정문은 시민들이 직접 가져온 꽃과 고인을 추모하는 쪽지로 장식됐다. 쪽지에는 ‘황망히 가시니 더욱 더 그립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12일 분향소를 찾은 임모(60)씨는 “서울시민은 아니지만, 서민을 먼저 챙기고 항상 겸손한 모습 때문에 고인을 좋아했다”며 “더 좋은 일 하실 게 많은 분인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
박 시장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시민사회계에서도 이러한 반응은 이어졌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고인은 시민운동 개척한 활동가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하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몇몇 여성단체는 “박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하여, 진실에 직면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다”면서도 “그러나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 장례위원회 측도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당초 13일 서울광장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노제(路祭)를 취소하고 온라인 영결식을 열기로 했다. 박홍근 의원은 12일 “코로나19 방역 협조를 위해 영결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성추문을 둘러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시장은 13일 영결식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 화장을 거쳐 경남 창녕 고향 묘소에 묻힌다. 유족 뜻에 따라 묘소는 얕고 살짝 땅 위로 솟은 봉분 형태로 마련된다. 12일 오후 기준 시청 앞 분향소에는 1만6000여명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7000여명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