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발행 증가→금리 상승→이자 증가→경기 위축 `악순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추경 편성을 두고 정치권의 대폭 증액 요구에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맞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정부 제출안(14조원)의 2~3배에 달하는 35조~50조원 수준의 추경 증액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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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치권이 요구하는 대로) 추경을 증액할 경우 국채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고 했다. 정부는 14조원 추경 재원 가운데 11조3000억원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마련한단 계획인데, 여야 요구대로 추경 규모가 늘어나면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수 십조원 수준으로 늘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제 막 본예산 집행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지출 조정엔 한계가 있다.
정부는 결국 대규모 추경 증액으로 적자국채 발행이 늘면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을 증액하면 딱 증액분 만큼의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소비, 투자, 대출 등에 영향을 주면서 그 이상으로 비용이 커진다”며 “이번 추경이 소상공인 지원 목적인데 대출 이자 부담이 늘면 결국 소상공인들의 부담도 늘 것이며, 그렇다고 언제까지 대출 만기 연장을 반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미국의 긴축 정책 가속화에 국채시장 여건이 가뜩이나 불안정하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 가시화로 대외여건이 악화하는 데다 최근 2년 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미 평년대비 많은 국채 발행 물량을 쏟아냈던 만큼 올해 시장 여건은 작년에 비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물가 자극에 대외신인도 악화까지…“표 노린 선심성 공약이 경제 악영향”
추가 국채 발행을 통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가뜩이나 뛰고 있는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달 3.6% 오르면서 지난 10월 이후 3%대 상승률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정부도 외식물가까지 공개하며 물가 잡기에 나서고 있는데 한편에선 돈을 풀면 정책 효과가 희석될 수밖에 있다.
빚으로 돈 풀기가 계속되면서 국가 경제의 대외 평판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불안 요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내놓은 1차 추경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재정수지 개선 비율이 낮은 편이다. 보고서는 “2020년~2022년 세계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추이를 살펴보면 한국은 악화(-27.3%)된 반면 일본은 62.1%, 미국·독일·영국은 53.7%, 58.1%, 55.2%, 프랑스는 48.9%로 각각 개선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크게 늘렸던 재정 지출을 되돌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우리나라만 확장 기조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우리 재정 운용에 우려의 목소리는 내고 있다. 피치는 지난 달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적극적 재정 지출과 재정적자 용인 기조 강화는 중기적으로 신용등급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이 재정적자 기조를 올해부터 많이 뒤집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재정 건전화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당장 얼마간의 부채비율 증가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에 북한 리스크까지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재정 리스크 언급하는 신평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 규모를 늘리는 것이 경제 전반으로 보면 좋을 것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이 전략적으로 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아직 선거가 없는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 정상화를 강하게 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선과 엉켜 그러기 어려운 국면”이라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