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비슷한데 삶은 극과 극…왜?

美·獨 상반된 복지모델
미 변호사 비교·체험기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392쪽|부키
  • 등록 2011-11-04 오후 2:27:21

    수정 2011-11-04 오후 2:27:21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바버라와 이사벨은 공통점이 많다. 선진국에 산다. 바버라는 미국, 이사벨은 독일이다. 똑같이 상위 10%에 드는 중산층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다르다. 사는 모양새다.

교육문제 때문에 교외에 사는 바버라는 늘 교통체증 속에 출근을 한다. 야근을 자청하는 회사 분위기에 칼퇴근 운운하는 건 `나를 잘라주세요`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여가? 그런 게 뭔지도 모른다. 반면 이사벨은 승용차가 필요없는 대중교통 천국에 살고 있다. 퇴근 이후에 회사에 남는 건 상상도 해본 일이 없다. 보육비는 공짜인 데다 매년 주어지는 6주간 휴가를 어떻게 쓸지가 늘 고민이다.

이 차이는 왜 미국이 아니고 독일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서두인 동시에 결말이다. 열쇠는 `복지`다. 책은 미국과는 생판 다른 독일의 복지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한 변호사가 독일에서 체험한 복지현장을 생생히 훑는다. 바버라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았던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유럽보다 훨씬 높은 미국인의 삶의 질이 왜 이 정도밖에 안되냐는 거다.

더구나 경제위기로 빚더미에 앉은 건 미국이다. 독일은 멀쩡하다.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에 미국인들은 더 오래 일하면서도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독일인은 `9 to 5`를 즐겨도 빚지지 않고 산다.

분석에 들어갔다. 유럽, 특히 독일이 미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사제도·고용·연금 등에서 독일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누리고 산다. 소비자로서의 지위도 다르다. 교육·의료·공공시설 등에서 독일인은 미국인보다 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제공받는다. 소비자로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건 세금 때문이란 진단도 꺼내봤다. 그러나 미국의 세금이 턱없이 적은 것도 아니다. 유럽의 80%에 달한다.

▲ 독일에선 휴일에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미국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흘씩이나 되는 휴일’이 넘쳐나도 독일 사회는 잘 돌아간다(그림=부키).
1979년부터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공익소송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는 노동변호사다. 이 배경은 중요하다. 노동법과 노동조합, 노동복지가 무엇보다 눈에 잘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가 볼 때 신자유주의에 매몰돼 황폐해진 미국에 독일 모델은 진정한 대안이었다. 왜 독일이냐는 질문에는 `대국`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8300만명 인구의 독일은 유럽의 대국이다. 제조업 강국이라 중산층 일자리 걱정이 없고, 노동자들의 높은 사회의식은 `신문의 나라` `책의 나라`란 별칭을 끌어냈다. 결정적으로 독일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다.

혹시 모를 오해의 소지는 사전에 잘라냈다. “나는 결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미리 선언한 거다. 이는 버락 오바마를 염두에 둔 포석일 수도 있다. 오바마는 한때 사회주의자가 아니냐는 논란에 곤혹스러워 했다. 그러나 저자가 볼 때 그도 결국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구제금융을 통해 투자은행을 살리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먹고 살만한 나라들의 고민은 결국 복지로 귀결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인 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선성장 후복지` 논리 위에 정리해고가 일상인 한국의 현실에 책이 던지는 파장은 크다. 미국 것이라면 앞장서서 좇고 있는 한국도 미국이 생각을 바꾸면 달라지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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