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블록체인 안돼"…한국형 STO 성공하려면

금융 당국 이르면 내년부터 토큰 증권 도입
블록체인 흉내만 낸 '토큰증권' 될까 우려 커
"블록체인 기술 특장점 살려 발행·유통 체계 만들어야"
'토큰의 증권성' 판단도 시작...국산 코인 상장심사 더 까다로워질 듯
토큰 증권 도입, 블록체인 산업에 위기 아닌 기회 돼야
  • 등록 2023-02-26 오후 5:54:53

    수정 2023-02-26 오후 7:45:44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블록체인 무늬만 띤’ 토큰 증권(STO) 제도가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발표한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을 보면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더라도 상호운용성, 중개인 최소화, 24시간 거래 같은 블록체인의 특장점을 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서다.

이렇게 되면, 토큰 증권을 도입하는 목적인 ‘유동성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고, 블록체인에 기반한 신(新)금융시장 창출도 불가능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존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 판단 압박까지 더해져, 토큰증권 도입이 오히려 블록체인 산업을 위축시키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크다. 블록체인 기술을 제도권 금융으로 포용해 이루려는 정책 목표가 실현되도록, 금융 당국이 제도 마련 시 블록체인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금융위, 이르면 내년부터 토큰 증권 도입

이르면 내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미술품, 음원 등에 조각투자 할 수 있는 토큰 증권이 전면 허용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토큰 증권은 ‘블록체인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기존 금융기관 중심의 전자증권 제도 아래서는 발행이 어려웠던 다양한 권리를 증권화하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 평가받는다.

예컨대 음악 저작권료 수익에 조각 투자하는 뮤직카우, 부동산 조각 투자 카사, 송아지의 지분을 취득해 한우에 조각 투자하는 뱅카우 같은 기존 조각투자 상품들도 토큰 증권으로 발행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의 수익성을 채권화해 투자를 받고 수익을 배분하는 등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권리까지 토큰 증권으로 발행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런 장점을 수용하면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증권 규제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토큰 증권 도입 취지 달성 가능한가?’ 의문 제기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토큰 증권을 도입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 ‘유동성 확대’를 꼽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지고 있는 유동성 친화적인 기능들이 있기 때문에, 전자 증권 형태보다 유동성 확대에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권을 토큰화하는 것만으로 유동성 확대가 보장되진 않는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발행한 STO 보고서에서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기능을 십분 활용할 때만 유동화의 발판이 마련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중개인 제거 △상호운용성 △24시간 거래 △분할소유 기능이 유동성을 확대해준다고 했다.

업계에선 이번 가이드라인을 놓고, 이런 블록체인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설계된 게 맞는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과도기적이긴 하지만 토큰 증권 발행에 ‘미러링 방식’을 적용한 것을 놓고선 “블록체인을 쓰는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러링은 토큰 증권을 발행하고, 똑같은 전자 증권을 또 발행해 토큰과 연계하는 솔루션이다. 블록체인 방식의 계좌관리가 법 개정 전엔 효력이 없어서, 소유권 추정을 위해 마련한 장치다. 그러나 법 개정 후에도 관습적으로 미러링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 조각투자도 모두 미러링 방식으로 발행됐다.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을 역임한 최공필 디지털금융센터 대표는 “예탁결제원, 한국거래소(KRX) 등 기존 인프라에서 돌아가는 기록이 아니면 못 믿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미러링을 위해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사업자들의 수익성을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상호운용성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확보될지 지켜볼 문제다.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함께 운영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으로 호환성이 높아야 ‘네트워크 효과’를 키울 수 있다. 금융당국도 토큰증권에 적합한 블록체인 인프라 기준을 마련하면서 상호운용성 확보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토큰증권 운영을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만 가능하게 제한해, 벌써 네트워크효과를 키우는 데 한계가 생겨버렸다. 실제 해외 토큰증권 시장에서 거래량 상위 자산들이 모두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체인 기반이다. 금융위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배제한 이유에 대해 “투자자보호와 디지털자산 시장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 대표는 “STO가 활성화되려면 블록체인의 상호운용성이 보장돼야 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하는데, 한국형 STO는 금융 당국의 규제 안에 디지털자산을 넣으려는 시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도 “토큰증권 시장 초기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기존 체계와의 타협안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솔루션”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또 “최종 목표인 유동성 증대를 달성하려면 블록체인 기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본격화…거래시장 위축 불가피

토큰증권 제도화와 함께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누고, 증권형 코인은 ‘자본시장법’ 규율체계에 따라 발행될 수 있도록 규율체계를 확립하는 게 국정과제의 목표라서다.

블록체인 업계는 이 과정에서 원치 않게(비자발적으로) 증권으로 분류되는 토큰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되면 토큰 증권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초기 기업이 대부분이라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지 못해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한국핀테크학회장인 김형중 고려대 특임교수는 “토큰증권도 자본시장법에 따라서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20여 종이 넘을 만큼 복잡하다”며 “토큰증권을 발행해보려다가 ‘이거 하지 말라는 거구나’하고 깨닫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만,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토큰들이 무더기 상장 폐지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상장 심사 시 발행사로부터 ‘증권성이 없다’는 법률 검토서를 받고 있어서다. 김 교수는 “법률 검토를 받은 토큰들은 소송 내고, 법원에 증권성을 판단해 달라고 할 수 있다”며 “쉽게 상장폐지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신규 상장에 소극적일 가능성은 크다. 김 교수는 “금융위원회가 증권성 판단에 대한 책임을 가상자산 거래소에 넘겼기 때문에, 거래소들은 상장 심사 시 이전보다 더 엄밀하게 증권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신규상장을 하긴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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