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성장의 함정

  • 등록 2007-08-06 오후 12:20:00

    수정 2007-08-06 오후 12:20:00

[이데일리 하상주 칼럼니스트] 최근 한국의 몇몇 대표 기업들이 성장의 함정에 빠져 있는 듯하다. 성장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높은 성장율을 보이면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의 목표도 전년보다 매출이나 이익을 10% 또는 20% 더 늘려 잡기도 한다. 주식투자가들도 어떤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이 늘어나면 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가 조금 높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게 손이 간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관습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가치의 창조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조적인 경영이니, 블루오션이니, 주주가치 경영이니 등등의 듣기 좋은 말들을 많이 한다. 여기서 가치의 창조란 기업으로 들어가는 돈(자원)보다 이 돈을 활용해서 만들어내는 돈(가치)이 더 많은 상태를 말한다. 즉 100원의 돈이 들어가면 이보다 더 많은 110원의 수익을 일정 기간 안에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의 내외부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런 가치 창조의 경영을 하고 싶어도 과연 회사가 지금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아니면 까먹고 있는지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회사의 성장은 측정하기가 쉽지만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회사가 지금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지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둔 가치를 까먹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회사에 투자한 총자본이 100이라고 하자. 여기서 회사가 매년 10의 수익을 만들어내면 이는 가치를 까먹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답을 하려면 투자한 100이라는 자본의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비용이 없는 자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내가 100이라는 돈을 저축하지 않고 어떤 회사에 투자한다는 것은 저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자본의 비용은 엄밀하게는 투자하는 개개인 또는 회사마다 달라지게 된다. 이런 각자의 기준이 모여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지는 시장 수익률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어떤 회사에 요구하는 기대 수익률을 10%라고 하자. 즉 어떤 회사가 자본 100을 마련하여 투자할 때 그 자본조달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10%라고 하자. 그런데 이 회사는 100이라는 자본을 투자해서 10이라는 수익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면 이 회사는 투자액*(투자수익률-자본조달비용)=100*(0.1-0.1)=0 이 되어 열심히 투자를 하고 일을 했으나 새로 만들어낸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 즉 겨우 현상 유지를 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회사들이 그리고 투자가들이 회사의 이익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회사가 좋아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회사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도 이익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투자를 해서 이익이 늘어나더라도 그 이익의 정도가 자본조달비용을 넘어서야만 그 이익 속에 새로 만들어낸 가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회사가 자본조달비용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투자를 하면 할수록 회사는 더욱 더 가치를 까먹게 된다. 회사의 경영자나 투자가는 이런 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한국의 대형 4사의 투자 규모와 투자의 결과 일어난 이익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왼쪽 표는 한국의 몇몇 대표기업의 과거 5년 유형자산투자의 결과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대략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만든 표이다.
 
먼저 삼성전자의 경우를 보면 이 회사는 2001년에서 2005년 동안 약 32.5조원을 유형자산에 투자했다. 그 결과 2006년의 매출액은 2001년보다 26.5조원이 더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2005년과 2006년의 평균액이 2000년과 2001년의 평균액보다 2.6조원이 더 늘어났다. 이상의 사실만 보면 이 회사는 투자를 한 결과 매출도 늘고 영업이익도 늘어났다.
 
그러나 사실은 이 회사가 투자한 32.5조원의 자본비용은 아직 계산되지 않았다. 만약 이 회사의 자본조달비용을 10%라고 본다면 자본조달비용은 3.2조원이 된다. 즉 이 회사는 위의 기간 동안 영업이익이 최소 3.2조원 이상 늘어나야만 투자의 결과로 회사가 새로 가치를 창조한 것이 된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회사들도 살펴볼 수 있다. SK텔레콤 역시 새로운 투자 결과로 새로 추가한 영업이익이 자본조달비용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오히려 대상 기간 동안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 위의 4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포스코만이 새로운 투자 결과로 만들어낸 영업이익의 증가액이 자본조달비용을 넘어서서 새로 가치를 만들어내었다.

마지막으로 자본조달비용을 왜 10%로 보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본조달비용이란 빌린 돈에 대한 이자만이 아니라 주주의 돈(*회사 내부에 유보된 돈 포함)에도 비용이 붙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당을 주지 않으면 주주의 돈은 공짜라고 생각한다. 주주가 회사에 투자를 할 때는 최소한 회사채 금리 이상의 수익을 요구한다. 주주는 투자하는 회사의 이익 변동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한다. 이 주주의 요구수익률은 바로 회사의 자본조달비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하필 대상 기간을 2001년에서 2006년의 5년으로 잡았는지도 궁금할 수 있다. 이것은 필자의 자의적인 기준이다. 이런 자의적인 기준에서 오는 왜곡을 최소로 하려고 영업이익의 경우 증가액을 구할 때 두 개 연도의 평균으로 계산했다. 당연히 시작 연도와 끝나는 연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참고로 필자는 이 글에 나온 회사들에 대한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 앞으로 이들 회사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이 글을 쓴 하 대표는 <영업보고서로 보는 좋은 회사 나쁜 회사(2007년 개정판)>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 http://www.haclass.com으로 가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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