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난 것도 아닌데…물품 사재기 하는 미국인들

자동차·가전제품 등 고가 제품뿐 아니라
커피·올리브 오일 등 식료품 대량 구매
유럽산 화장품 등 수입산 제품도 축적
"가격 인상 대비 소비 확대…인플레 우려"
  • 등록 2024-12-15 오후 4:18:17

    수정 2024-12-15 오후 7:16:14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한 달가량 앞두고 많은 미국인이 물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가전제품 등 고가 제품을 업그레이드 할 뿐 아니라 커피와 올리브오일 등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식료품까지 재고 축적에 나서면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무료 배포 된 xAI의 그록2를 활용해 만든 미국인들이 마트에서 사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그록2)


美 관세 인상 대비 물품 사재기 움직임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세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잠재적인 가격 인상에 대비하기 위해 상품을 비축하고 기존 제품을 서둘러 구매하기 위해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시간 대학교의 최근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1가량은 내년 가격 인상이 예상되면서 현재가 주요 구매를 하기 좋은 시기라고 답했다. 이는 한 달 전 조사 10% 수준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이며, 역대 최고치다. 또 최근 크레딧닷컴이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2000명 중 3분의 1은 관세 우려로 인해 현재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거주하는 레다르 사렉(66)은 매주 비제이스 홀세일 클럽을 방문해 쇼핑카트에 물품을 가득 담아 800 제곱피트(약 22평) 규모 지하실에 가능한 많은 커피와 올리브 오일, 대량 종이 타월을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엔 4만4000달러를 들여 2023년형 토요타 RAV4 하이브리드를 구입해 이전에 타고 있던 2010년형 토요타 하이랜더를 교체했다. 앞으로 4년 이내 가전제품이 고장날 것을 우려해 2300달러를 들여 오래된 세탁기와 건조기를 새 모델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인 관세 인상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이민자 추방 정책 때문에 노동 비용을 증가시켜 국내 상품 가격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소프트웨어 컨설턴트 크리스토퍼 푸트(35)는 최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제품 구매에 전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 대선 이후에 삼성 히트펌프(8087달러), LG TV(3214달러), 데논 오디오 리시버(1081달러), 밀레 진공청소기(509달러) 등 새 가전제품에 1만2000달러 이상을 썼다. 그는 트럼프 1기 당시 코로나19와 맞물려 자동차 가격이 상승했던 것을 회상하며 “트럼프 당선인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서면 상품 가격에 더 광범위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인들의 물품 사재기는 고가 제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한 티아 흐루발라는 트럼프 2기 출범 후 더 비싸질 것으로 예상하는 꼬달리, 라로슈포제, 바이오더마와 같은 유럽산 화장품 제품을 여행가방에 가득 담았다고 전했다. 경제 복잡성 관측소(OEC)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기준 미용 제품 수입 규모는 57억7700만 달러에 달한다.

14일(현지시간) 무료 배포 된 xAI의 그록2를 활용해 만든 미국인들이 마트에서 사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그록2)


◇미래 소비 확대되면서 물가 상승 촉진 우려


미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비를 확대하면 실제로 물가 상승을 촉진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11월 상품 및 서비스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7% 상승했으며, 이는 전월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승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과 관련해 내구재 구매 급증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WSJ은 짚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에 모든 수입 제품에 10%에서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선거 이후에는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 중국에 추가 10% 관세 부가를 언급하며 ‘관세 전쟁’을 예고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관세가 제조업을 부양하더라도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로버트 바베라 존스홉킨스대 금융경제센터 소장은 “사람들은 ‘내가 앞으로 12개월 안에 TV를 사려고 했는데, 차라리 12주 안에 사야겠다’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한꺼번에 구매를 앞당기게 되면 의도치 않게 가격을 올리게 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리슨 홍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2007년 인도의 바스마티 쌀 수출 금지로 미국 소비자들이 쌀을 사재기하면서 부족 현상이 심화했고, 재고가 줄면서 몇 달 후 더 큰 가격 상승이 발생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구매가 매우 많고,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면 소매업체는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리 배리 베스트바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관세의 대부분은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월마트, 로우스, 오토존의 경영전도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미래의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폴 애쉬워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북미 수석 경제학자는 “소매업체와 제조업체들이 수입 비용 증가를 예상하며 지금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관세 인상에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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