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처절한 절망감이 파국으로 치닫는 ''도살장의 시간''

이승우 단편소설 ''도살장의 책'', 연극 ''도살장의 시간''으로 각색
  • 등록 2009-10-28 오전 11:45:00

    수정 2009-10-28 오전 11:45:00


 
[노컷뉴스 제공] 이승우 작가의 단편소설 '도살장의 책'이 연극 '도살장의 시간'(연출 한태숙)으로 무대에 오른다.

10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이 1시간40분여간에 달하는 연극으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우선 제목이 바뀌었고, 소설에는 없는 인물들 '기억'(류혜린 분), '천편의 내면'(정영두 분), '윤옥'(이영숙 분), '가죽장'(김원주 분) 등이 만들어져 캐릭터가 다양해졌다.

'천편'과 '여자'(서영화 분)만 나왔던 소설에 비해 연극 속 다양한 캐릭터는 서로를 증오하고 자극하면서 무대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승우의 원작 소설에서는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도서관에 정신의 결정체인 책들이 부패의 냄새를 풍기며 ‘문학의 위기와 몰락’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연극 '도살장의 시간'에서는 한 남자 '천편'(박지일 분)의 연극에 대한 집착과 상처, 연극으로 인한 방황이 결국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과거 연극무대였다가 천편의 형의 사고 이후 도살장이 됐고, 다시 연극사 자료실로 재개관된 공간에서 도살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천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서는 제목처럼 도살장 위에 새로 지은 도서관이었던 공간이다.

사라지고 다시 새롭게 들어서는 공간들은 "오래된 것들은 모두 언젠가 바스러지죠. 서서히 부패하고 바스라져서 먼지가 돼버리죠."라는 대사처럼 현대 문명 앞에 책이 부패하고, 연극이 죽는다는 의미를 전해준다.

2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도살장의 시간' 전막 시연 후 만난 한태숙 연출가는 "소설을 연극무대로 옮기면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애썼다. 연극에서는 인물을 통한 구체화가 되지 않으면 무책임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라며 "연극과 책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도살장의 시간'으로 제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연출가는 "살인으로 얼록지는 소설의 결말과 달리 이제 더이상 극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천편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다. 천편이 연극무대로 못가는 것이야말로 죽음"이라며 "연극이 죽을지 모르는 현대사회가 불안하지만 계속 발버둥쳐야 하는 시기"라고 연극의 주제를 명확히했다.

연극 '도살장의 시간'은 27일부터 11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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