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도 없는데 월세 내라니…임대차계약의 맹점[판례방]

■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4)
건물 인도와 무관하게 차임지급의무 발생
미완공 건물 계약에서 임차인 위험성 확인
임대인 의무불이행 증명시 지급 거절 가능
  • 등록 2024-12-14 오후 12:30:00

    수정 2024-12-14 오후 12:30:00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대법원이 최근 임대차계약에서의 차임지급의무 발생 시점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제시했다. 이는 임대차계약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즉 “건물을 인도받지 못한 임차인에게도 차임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준공 전 건물의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는 상황에서, 이 판결의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챗GPT 달리
사건의 발단은 준공 전 상가건물의 임대차계약이었다. 분양권자 A는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피고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A는 원고들에게 분양권을 양도했는데, 피고가 보증금 잔금을 지급하지 않자 건물을 인도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임대차기간 동안의 차임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분쟁 유형 중 하나다.

우리 민법은 임대차계약의 본질적 요소로 ‘목적물의 사용·수익 제공’과 ‘차임 지급’을 규정하고 있다(제618조). 또한 임대인의 기본적 의무로 ‘목적물의 인도’와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 유지’를 명시하고 있다(제623조). 이는 임대차계약의 쌍무계약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의무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심급별로 달랐다.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1심 법원은 두 가지 중요한 법리적 판단을 했다. 우선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이상 그 법률관계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았다. 특히 준공 전 분양권 상태에서 체결된 임대차계약이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원고들이 분양권을 양수하면서 임대인의 지위도 함께 승계했다고 보았다. 이는 부동산 거래의 실무적 관행과 당사자들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다만 1심은 임대차계약의 특약사항에 따라 일부 면제되는 차임을 제외한 금액만 인정했는데, 이는 계약 자유의 원칙과 당사자의 약정을 존중한 것이었다. 이처럼 1심은 계약의 형식적 효력과 더불어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의사도 함께 고려한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2심은 이러한 1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2심은 “목적물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임지급의무도 없다”는 단순한 논리를 적용했다. 건물을 실제로 사용하지 못했다면 차임을 낼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는 실질적 형평성에 중점을 둔 판단이었으나, 계약법의 기본 원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법원은 2심의 이러한 단순한 논리를 수정했다. 대법원은 임대차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면 당사자의 의무는 곧바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즉,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는 목적물 인도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 성립만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만 임대인이 자신의 의무(건물 인도와 사용·수익 보장)를 이행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그 한도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임대차계약의 본질에 충실한 해석이다. 계약이 성립하면 양 당사자의 의무는 곧바로 발생하되,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건물 인도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았던 기존의 시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주의할 점이 있다. 임대인은 차임을 청구하기 위해 단순히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질적으로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건물의 인도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반면 임차인은 계약 체결만으로도 차임지급의무가 원칙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차임 지급을 거절하려면 임대인의 의무 불이행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건물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임대인의 의무 불이행이 실질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야 한다.

준공 전 건물의 임대차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번 판결은 실무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임대차계약에서 발생하는 기본적 의무와, 그에 대응하는 거절권한을 구분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유사한 분쟁에서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보다 명확히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분쟁 상황에 대한 해결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실무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행정법원·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서울지방변호사회 청년변호사특별위원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몸짱 싼타와 함께 ♡~
  • 노천탕 즐기는 '이 녀석'
  • 대왕고래 시추
  • 트랙터 진격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