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비밀장부와 같이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사가 미궁 속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 전 회장이 유력 정치인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가 성 전 회장이 남긴 육성 인터뷰와 메모다. 또 성 전 회장의 행적에 대한 증언과 기록도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 성 전 회장이 메모에 등장한 정치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간접 증거만으로는 성 전 회장이 이들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받기는 불가능하다. 수사팀은 지난 15일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전화 21개, 디지털증거 53개 품목, 수첩·다이어리 34개, 회계전표 등 관련 파일철 257개, 기타 파일철 16개를 압수했다. 삭제된 흔적이 있는 자료는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DFC)로 보내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수십만쪽 분량의 방대한 자료 가운데 ‘스모킹 건’(smoking gun, 핵심 증거)이 나올 수 있지만, 현재까지 분위기는 발견하지 못한 눈치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핵심적 증거가 부존재하기 때문에 주변 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정성을 다해 채워나가다 보면 귀인의 도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결정적 증거 확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성 전 회장 로비의혹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에 큰 상처만 남긴 채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공여자가 사망한 정치자금 수수는 입증이 쉽지 않아 기소되는 경우가 드물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비타 500’ 박스에 3000만원을 넣은 사람과 박스가 실린 자가용을 운전한 사람, 박스를 이 총리에게 전달한 사람이 각기 다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지시한 성 전 회장은 사망했다. 검찰은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 밝혀야 한다.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재판부가 ‘3000만원이 든 박스와 이 총리가 받은 박스가 같은 것이라는 증거는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황상 바뀌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답할 수는 없다. 특히 의혹이 많아질수록 검토해야 할 자료와 수사 대상 또한 늘어나 수사가 방향을 잃고 좌충우돌할 수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하나의 단서를 찾으면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한다”며 “단서를 끝으로 답이 맞춰지는 경우도 흩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 대상은 정권 실세다. 수사팀은 연일 계속되는 ‘외풍’을 잠재우고 수사의 돌파구가 될 확실한 ‘한방’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