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화이트칼라부터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이를 통해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제도가 자리를 잡아갔다.
지난해 리먼 파산의 여파로 비정규직, 일용직, 여성 등 취약계층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10년간 `노동유연성`에 무게를 둔 고용구조를 고착화하며 생긴 `양극화`의 자화상이다.
◇ 위기..취약계층에 `직격탄`
리먼 파산 이후 상용직 취업자는 증가세를 유지한 반면 자영업주, 일용직 등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 2분기 일용직과 자영업주 취업자수는 각각 13만3000명, 28만6000명 줄어들며 지난해 2분기에 비해 2.1배, 4.3배 증가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3년 0.325에서 지난해 0.343으로 크게 높아졌다. 보통 지니계수가 0.3이상이면 불평등이 심한 사회로 여겨진다. 같은 기간 소득 50%이하의 빈곤층은 20%에서 21.1%로 늘어났다.
양극화 판단의 주요 지표인 중간계층도 크게 줄었다. 1990년 74.2%에 달했던 중산층은 외환위기후인 2000년 68.5%로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63.3%까지 추락했다. 소득수준을 5등급으로 나눴을 때 딱 중간인 3분위 계층의 지난 2분기 월평균 실질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305만원)에 비해 2.95% 줄었다.
150만명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내년도 최저생계비와 저임금 영세업체 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은 각각 2.75%만 인상됐다. 최저생계비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며, 최저임금제 역시 1998년 이래 10년만에 최저수준이다.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펼 수 밖에 없는 여건이다.
◇ 깊어지는 양극화.. 왜?
이번 위기로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자리잡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고용`을 비용요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제발전으로 상위의 혜택이 저소득층으로 내려오는 적하효과(트리클다운 이펙트)를 기대하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줄곧 약화돼왔다"며 "이번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며 노동시장 실업자 증가, 소득 감소로 인한 중산층 축소로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양극화지수는 0.57%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를 확립하고, 보수적 채용을 진행한 면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위기 초에는 외환위기 경험을 거울 삼아 `고용규모` 축소보다는 임금이나 시간조절을 통한 잡셰어링 노력이 눈에 띄었다.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이 빈곤층으로 탈락하는 것은 현행 제도상의 문제가 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노동시장에서 넘나들 수 없는 벽이 있는 데다 근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
실제 실업급여의 수급률은 2006년 기준 10%에 불과하다. 실업급여를 못받는 90%가운데 60%가량은 회사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총 취업자 2286만명중 59%(1353만명)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임금근로자 10명(1605만명)중 4.3명(695만명)은 임시·일용직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0일 "생활고를 겪는 근로자에게 실업급여를 충실히 지급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로 저소득 계층은 물론 실물경제 붕괴로 인해 안정적 직장을 가진 많은 중간계층도 실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패러다임 전환중..양질의 일자리 공유해야
이번 리먼 사태가 고용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노동유연성` 중심의 미국식 신자유주의에서 `고용유지와 보호`에 무게를 둔 유럽식 고용정책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감지되기 때문.
그동안 유럽의 경우 탄탄한 사회보장 체계하에 고용유연화를 회피하며 다소 높은 실업률을 방치했다. 반면 미국은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성을 내세워 4%대의 낮은 실업률과 높은 성장을 구가하면서 고용유연화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노동유연화 기조로만 보면 지난해 11월 GM을 파산시켰어야 한다"며 "지금은 미국마저 정부 돈을 투입해 고용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책은 여전히 `고용유연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재정부는 올해 첫 발표한 `거시경제안정보고서`에서 "노동유연성과 고용률은 양의 상관관계에 있으므로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윤증현 장관 역시 "노동시장 유연성이 해고의 자유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며 "정부는 해고된 노동자가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전직훈련, 오리엔테이션, 능력계발 기회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폈던 일본이 최근 청년고용 핵심인 프리터 규모를 명시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 노력에 나선 것은 우리나라의 정부 정책과 크게 비교된다"며 "외환위기를 돌아볼 때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실업이 늘어난 이후가 실제 위기의 최고조 시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9일 세계은행(WB)이 발표한 2010년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에서 우리나라의 고용·해고 부문은 183개국중 150위에 머물렀다. 법정퇴직금 등 해고비용 과다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병권 부원장은 "근본적으로 고용을 보호하고 취약층 안전망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야한다"며 "정책에 앞서 고용에 대한 정부의 발상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 장관이 `한국경제의 아킬레스`라고 지적한 경직된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데 있어서 `고용=비용`의 등식이 아닌 취약계층을 포함한 안전망 확보와 함께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공유`하는데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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