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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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9일 헌법재판소는 8:1의 압도적 다수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그동안 재판관들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인용과 기각 의견을 4:5 또는 5:4로 예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1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보수와 진보의 비율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통진당의 위헌적 활동에 대한 법적 판단이지 보수와 진보의 힘겨루기에 따른 정치적 판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 해산의 요건에 대한 법적 판단은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정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과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의 확인과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정부에서는 통진당의 중추적 구성원들의 종북 성향을 보여주는 발언이나 문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전과를 비롯해 이석기 전의원과 RO(혁명조직)의 내란음모사건, 비례대표 부정 경선 및 당내 폭력 등 수많은 자료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증거들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인용 의견을 낸 다수의 재판관뿐만 아니라 기각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도 크게 다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견이 갈리게 된 결정적 분기점은 증거를 통해 확인된 사실들을 통진당에 귀속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예컨대 소수의견에서는 이석기 전의원과 RO의 활동이 정당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통진당을 해산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통진당이 이를 부정하고 일부의 일탈행동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통진당 해산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다. 소수 의견은 통진당의 위헌성을 시사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각기 검토하면서 그 하나 하나가 개인의 일탈행동일 뿐 통진당 해산의 근거로 불충분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반면 다수 의견은 이러한 수많은 위헌적 활동이 우연히 중첩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며,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통진당 자체를 위헌적인 정당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통진당의 개별적 활동에 대한 ‘법적’ 평가에 기초한 통진당의 해산 결정이지 야권에 대한, 혹은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이용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예컨대 통진당의 해산을 계기로 종북 몰이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수의 앞잡이로 몰아세우는 태도 등은 통진당 해산 결정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망국적 지역 갈등에 이어 이념 갈등을 또다시 극단화시킴으로써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할 우려가 매우 높다.
이제는 보수와 진보 모두 조금 차분해지자.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누를 수 있는 호재라고 생각해서 압박하는 태도를 취할 것도 아니고, 진보세력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조건 비판하면서 헌법과 국가 질서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것도 아니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대립이 아닌 보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이번 결정을 계기로 극단적이고 선명한 투쟁만을 강조하는 강경 보수, 강경 진보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의사에 충실한 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가 힘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