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대의 피카소다"

화가 겸 영화감독 줄리안 슈나벨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칸·골든 글로브 감독상 동시 석권
추상화 퇴조할 무렵 ''표현과 감정의 회복'' 외치며 회화작업
  • 등록 2008-03-25 오전 10:56:00

    수정 2008-03-25 오전 10:56:00

▲ 줄리안 슈나벨 /게티 이미지 제공
[조선일보 제공] 28세에 뉴욕 미술계를 뒤흔든 스타 화가였던 그는 56세에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감독상을 휩쓴 스타 감독이 됐다. 남들은 평생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힘든 두 분야에서 차례로 정상에 오른 주인공은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57)이다.

그는 "나야말로 여러분이 평생 만날 사람들 중에서 피카소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대놓고 으스대서 수많은 적을 만들어 왔다. 27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 슈나벨의 작품 32점이 걸리는 것을 맞아 뉴욕에서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인 슈나벨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을 피카소에 빗댄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런 답장이 날아왔다.

"피카소는 미술을 통해 세계와 소통했다. 그도 (나처럼) 미술을 통해 다른 시대와 문화와 '대화'를 나눴다. 그도 (나처럼) 수많은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그도 (나처럼) 회화에 이끌렸고, 미술의 '형식'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공통점이 뚜렷하지 않나?"

아시아 순회전이자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슈나벨 전시는 그의 '기고만장'이 허풍인지 아닌지 실물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슈나벨의 '잘난 척'은 상식과 기성에 도전하는 그의 작품 성격과 맥이 닿아있다.

그는 '회화는 끝났다'며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1970년대 말 서구 미술계에 이른바 '뉴 페인팅(New Painting)'을 들고나와 일약 기린아로 떠올랐다. 1950년대의 액션 페인팅과 1960년대의 팝 아트가 힘을 잃어가던 시절, 그는 가로, 세로 2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깨진 접시 조각을 붙이고 물감을 칠하는 '거친' 작업을 들이밀었다. 1979년 뉴욕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다. 지적이고 관념적인 미술에 대들면서 '표현과 감정의 회복'을 주장한 그의 그림은 경악과 열광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그는 당시의 반응에 대해 "아마 내 그림이 서구 미술계의 신경을 정통으로 자극했던 것 같다"고 했다.

1980년대 들어 화가로서 각광 받은 슈나벨은 1990년대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동료였던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1960~1988)와 쿠바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1943~1990) 등 예술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발표했으며 '잠수종과 나비'로 상복(賞福)이 터졌다.

▲ 줄리안 슈나벨의‘올라츠의 초상’. 나무판에 유화물감, 접시 조각, 합성수지 접착제. 213.4×139.7㎝. 1993년작. /갤러리 현대 제공

"당신은 이제 '화가'가 아니라 '화가 출신 감독'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다른 분야(영화)도 다룰 줄 아는 화가"라고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화가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 지금도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인간이 예술을 통해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영화건 미술이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절한 매체를 택하는 것뿐이다."

이번 한국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1980년대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부터 2000년대에 그린 최근작까지 망라됐다. 강렬한 감성의 분출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화풍이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올라츠의 초상'(1993년작)이다. 그는 캔버스에 깨진 접시 조각을 잔뜩 붙인 뒤 그 위에 붉은 색과 노란 색 유화물감을 듬뿍 발라서 두 번째 아내의 초상을 그렸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02)73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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