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던 당시 특유의 사교성과 유머감각으로 재계 마당발로 꼽혔다. 그는 한국경제의 성장 조건으로 수출을 꼽았다.
박 전 명예회장은 이 같은 소신과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일경제협회 회장, 무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차원의 대외통상과 무역교류 확대에 힘썼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자본금 100만 원으로 대한계기제작소를 시작으로, 오양실업(1949년), 대양비료(1953년)를 연이어 설립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는 무역회사인 대한농산을 창업했다.
하지만 1972년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위기에 빠진 대농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중에도 섬유산업에 집중한 박 전 명예회장은 10여 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키워 대농그룹을 재계 30위까지 올렸다.
그는 ‘인간중심 경영’과 ‘사업보국’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늘 주위에 함께 일하는 동료를 무한 신뢰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장남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과 딸 선영ㆍ경희 씨, 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 은희 씨, 사위 이상렬 청운대 총장이 있다. 발인은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