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철(鐵)의 만남… 자연과 인간의 소통

유럽 활동 작가 이우환, 국내서 첫 조각전 열어
  • 등록 2009-09-01 오전 11:46:00

    수정 2009-09-01 오전 11:46:00

[조선일보 제공] 서울 경복궁 옆 국제갤러리에서 이우환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의 국내 개인전은 2003년 호암미술관 전시 이후 6년 만이고, 조각 작품만 선보이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우환은 한국에서 〈선 시리즈〉 〈점 시리즈〉 등 회화로 유명하지만 해외에서는 그의 조각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우환의 조각 작품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철판이나 철봉과 함께 있는 커다란 자연석이 전부로,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 눈앞에 펼쳐진 두 개의 거대한 물(物)이 정적 속에 놓여 있는데,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묘한 울림이 있다.

돌과 철판은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말해주는 소재다. 작가는 돌에 대해 "지구보다 더 오래됐으며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돌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가늠해볼 수밖에 없는 '불투명한' 존재다. 언제부터 존재하게 됐는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이다. 철판이나 철봉은 공업용 소재로 쓰이는 것을 가져왔다. 작가는 산업용 철판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산업화를 상징한다. 자연석과 공업용 철판을 조화시켜 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긴장과 소통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인공(人工)을 이해하고 조화시키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인간이다.

▲ 이우환의 조각은 자연에서 캐낸 돌과 공장에서 가져온 철판·철봉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자연을 나타내는 돌과 산업화를 상징하는 철판 가운데서 이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이우환의 작품은 인위적이고 가공적인 손길을 최대한 자제한다. 여기에는 모더니즘을 넘어서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우환은 "미술에서 모더니즘은 캔버스 안에 작가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캔버스가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밀어붙였다. 이제는 캔버스 바깥에도 눈을 돌려보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이끌었던 일본의 '모노하(物派)' 운동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모노하 운동은 1968년 일본 작가 세키네 노부오가 고베의 한 공원에서 땅을 파낸 뒤 그 흙으로 원기둥을 표현한 작품이 시작이었지만, 이우환이 그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면서 세계적인 사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은 1969년 '존재와 무를 넘어서-세키네 노부오론(論)'을 발표했다. 모노하'는 모더니티를 넘어서는 운동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우환의 이론은 당시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적 흐름과 맞물리면서 '모노하'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인공적이지 않은 사물을 이용해 창조보다는 관계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모노하'란 이름이 붙었다. 이우환은 당시에도 자연석과 철판을 이용한 조각을 통해 자신의 모노하 이론을 창작활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모더니티를 넘어선다는 이슈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까지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이우환의 이번 전시 작품도 철판과 돌이 주를 이루면서 극도로 절제된 표현을 보여준다. 〈침묵〉 등의 제목이 붙은 작품 10점이 전시돼 있다. 언뜻 보기에 이우환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서양에서 일어난 미니멀리즘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은 표현을 최소화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크게 보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작품은 표현을 자제하면서 밖의 공간과 여운·떨림에 귀 기울여 보라는 의미다."

그가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에는 산업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대한 비판 정신이 깔려 있다. 작가는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필요할지 몰라도 결국 인류의 몰살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성장률을 낮추고 천천히 가더라도 인류의 삶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열린다. (02)733-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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