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야 제맛 나는 ''도루묵'' 까칠해도 맛은 훈훈한 ''털게''

관동별곡… 고성 가을 별미
  • 등록 2009-10-15 오후 12:10:00

    수정 2009-10-15 오후 12:10:00

[조선일보 제공] 고성 사람들은 물회와 명태맑은탕(지리), 도치두루치기, 흑돼지, 털게찜, 막국수, 도루묵찌개, 추어탕을 '고성8미'로 꼽는다. 이 중 이제 막 맛이 들기 시작한 건 도루묵과 털게다. 겨울까지 제철이다. 고성에서도 특히 거진항은 명태로 유명했으나, 요즘은 보기도 힘들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명태는 요즘 잘 잡히지 않는다.
 
▲ 털게

◆도루묵

도루묵이 도루묵이 된 사연. 고려 왕이 난을 피해 동천(東遷)했다. 우연히 맛본 생선이 너무 맛있었다. 이름을 물으니 목어(木魚)란다. "이 맛있는 생선을 겨우 목어라고 부르다니! 앞으로는 은어(銀魚)라고 부르라." 왕의 명령에 따라 목어는 은어가 됐다. 서울로 돌아온 왕, '은어' 맛을 잊지 못하고 수라상에 올리라고 명한다. 다시 먹은 '은어'는 맛이 없었다. 왕이 다시 명한다. "도로 목어라고 해라." 조선 정조 때 이의봉(李義鳳)이 편찬한 '고금석림(古今釋林)'에 나오는 이야기다.

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음식이 원산지에서 먹어야 맛있다지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도루묵은 원래 맛이 별로 아닌가?

▲ 거진횟집 도루묵찌개. / 조선영상미디어

고성군 거진항에서 도루묵을 맛보고 비로소 왕을 이해했다. 고성 거진항에서 맛본 도루묵은 서울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살은 희고 부드럽고 촉촉하다. 배가 터질 듯 들어찬 알은 탱탱하면서 톡톡 터진다. '거진횟집'(033-681-6868) 주인 이경희씨는 "도루묵은 살아있어야 맛있다"고 했다. "냉동은 퍽퍽해요. 알도 냉동 들어갔다 나오면 잘 익질 않고 딱딱해요."

도루묵은 9월 말부터 나오기 시작, 겨울까지 잡힌다. 이경희씨는 "아직은 알이 덜 여물었고, 11월 중반부터 최고"라고 했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 청양고추, 소금으로 양념해 끓인 찌개가 칼칼하다. 서울에서 도루묵구이를 먹으면 퍽퍽한데, 고성에선 맛나다. 거진횟집 등 고성 식당에선 대개 한 냄비에 3만원 받는다. 서넛이 먹을 수 있다. 구이는 1접시 10마리쯤 나오고 2만~3만원 받는다.

◆털게

수온이 찬 바다에서만 나온다. 이경희씨는 "북한 쪽 동해에서 많이 나는데, 남한에서는 고성에서만 나온다"고 했다. 몸 전체가 털로 덮였다. 집게발은 작고 따가운 뿔투성이다. 10월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절정을 맞지 않았다. "더 있으면 뱃속에 빨간색 알이 꽉 차요. 기온이 더 떨어지고 바닷물이 차가워져야 제맛이 나지요."

▲ 거진횟집 털게찌개. / 조선영상미디어

꽃게와 비슷한 크기. 껍질이 얇고 주황색에 가까운 붉은빛이 나는 건 대게와 비슷하다. 게 맛도 꽃게와 대게 중간쯤 된다. 살이 희고 결이 곱다. 대신 살과 내장에 밴 게 특유의 향은 대게보다 옅다. 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면 비린내가 덜 하다며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쪄서 먹기도 하고, 끓여 먹기도 한다. 껍데기가 꽃게처럼 딱딱하지 않아 먹기가 훨씬 수월하다. 단 뿔이 많아서 먹다 보면 손가락이 콕콕 찔리니 조심해야 한다.

살도 먹을 만하지만, 특히 국물이 훌륭하다. 찌개를 끓여서 국물을 내면 달다. 대게보다 맑고 가벼운 감칠맛이다. 고성에선 된장을 풀어서 맵지 않고 구수하게 찌개를 끓인다. 작은놈은 20마리 8만~10만원, 큰놈은 1㎏당 4만~5만원쯤 받는다. 간장게장도 담근다. 이경희씨는 "간장에 담그면 털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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