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비문 같기도, 외계 문자 같기도 한 이 공식의 정체는 `가우시안 코플라 함수(Gaussian Copula Function)`다. 창안자는 `데이비드 리`라는 중국계 금융공학자다. 지난해말과 올초 외신을 통해 자주 소개됐던 공식이다. `월가를 무너뜨린 악마의 함수` `지옥에서 온 공식` 등의 수식어와 함께 말이다.
함수 하나가 어떻게 월가의 붕괴를 가져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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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산정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지부진하던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와이어드매거진에 따르면 이에 힘입어 지난 2000년 2750억달러에 불과하던 CDO 시장은 2006년 4조7000억달러로 급팽창했다.
이 시기 CDO는 흥행보증 수표였다. 애초부터 리스크가 커 수익성이 높았던 상품에 판매자의 신용보강이 더해져 높은 신용등급까지 부여됐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렇게 모기지 채권을 유동화한 자금으로 다시 부동산대출을 남발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미끼금리를 내걸어 집을 사도록 꼬드겼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모두가 행복해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가계는 집값이 오르자 더 많은 빚을 얻어 소비를 즐겼고, 월가의 대형은행과 투자은행 헤지펀드 보험사들도 모기지와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목돈을 챙겼다.
부동산 경기가 거꾸러지자 여기저기 사상자가 속출했다.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등 기라성 같은 투자은행이 문을 닫았다. 수수료를 받고 채권의 부도위험을 떠안았던 신용디폴트스왑(CDS) 투자자들도 뒤통수를 맞았다. 세계 최대 보험사 AIG도 이렇게 망가졌다.
호황기때 막대한 레버리지(부채)를 일으켜 모기지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금융회사들은 부도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보유중이던 주식과 채권 상품선물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디레버리지(Deleverage)의 물결 앞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본연의 임무인 `위험 헤지`에서 벗어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던 파생상품이 금융시장의 대량살상무기로 되돌아 온 것이다. 리스크를 쪼개 끊임없이 분산하면 `위험 제로`의 상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던 월가 금융공학자들의 실험은 비극으로 끝났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자 `감독당국은 어디서 뭘 했냐`는 비난이 들끓었다. 그 반성의 결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최근 흐름이 금융감독규제 강화다.
또 월가 부실의 원흉으로 지목돼 온 금융회사 경영진의 보수체계에 대해서도 규제의 칼날을 드리웠다. 유럽 역시 미국과 유사한 방향으로 파생상품의 지급결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청산결제소를 도입하는 한편 금융사 임직원의 인센티브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지난 5일 끝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은행의 자본확충을 강화하고 경영진 보너스 지급을 제한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각 국 재무장관들은 경영진 성과급의 경우 장기성과에 근거해 책정하도록 하는 한편, 은행의 수익이 지속적으로 나빠질 경우 지급한 보너스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탈(脫)규제가 만들어 낸 `괴물`에 혼쭐이 난 글로벌 금융시장이 규제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당장 미국만 해도 오바마의 금융감독개혁안이 의회에 상정됐지만 월가의 로비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980년대초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파산과 90년대 롱텀캐피탈매니저먼트(LTCM)의 파산 때도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강화 필요성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월가의 로비력은 늘 자신에게 향하던 올가미를 무력화시켰다.
물론 이번 금융위기로 내상이 컸던 만큼 당분간 월가도 재충전의 시기를 보낼 것이다. 고(高) 레버리지 전략에서 벗어나 부채비율을 낮추고 고위험 투자를 자제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빚잔치가 끝나면 월가는 다시 낯빛을 바꿀 공산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컬럼니스트 마틴 울프 같은 이들이 "제대로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마불사의 경험이 생생한 월가는 더 가공할 악마의 공식을 찾아나설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