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미투' 2년 4개월 後 박원순까지…달라진 게 없다

  • 등록 2020-07-14 오전 8:39:28

    수정 2020-07-14 오전 8:48:29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초대화면을 공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온 글귀다.

성추행 의혹으로 비서에게 고소를 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임기를 약 2년 남겨놓고 돌연 목숨을 끊어 큰 충격을 안겼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지만, 박 시장을 둘러싼 ‘성추행’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전 비서 직원이 입장 발표까지 하며 성추행 의혹은 더 커진 상황이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고소 사건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지만, 별도의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성계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성추행 의혹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왜곡, 2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며 “피해 경험을 드러낸 피해자의 용기를 응원하며 그 길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 역시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또다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선 우리 사회의 일면에 분노한다”면서 “피해자의 신변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진실을 밝히고자 했을 뿐인 피해자의 용기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분노한다”고 지적했다.

또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이 또다시 가해자를 비호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막는 것에 분노한다”며 “피해자가 바라왔던 대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가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13일 오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시장의 영정과 아들 주신 씨(오른쪽 세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일부 시민들은 박 시장을 감싸기 위해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을 공격하는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2018년 3월 전직 비서 김지은 씨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 한지 2년 4개월이 지났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바라보는 인식 수준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성폭력 피해를 다룬 책을 나눠주며 해시태그 공유를 독려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네티즌들은 해시태그를 인용한 이들에게 안 전 지사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김지은씨의 저서 ‘김지은입니다’, 성폭력 문제를 다룬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이은의 변호사의 ‘예민해도 괜찮아’ 등을 나눠주겠다고 밝히며 “느리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했다.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후 조문을 두고 진영갈등이 촉발하기도 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 차원의 5일장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공론장을 달구는가 하면, 피해 호소인에 연대하기 위해 조문할 수 없다는 공개적인 선언으로 논쟁을 낳기도 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박 시장의 지지자들이 운구차량이 떠난 뒤 오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했던 A씨는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너무나 실망스럽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존엄을 내려놓았다”라며 “죽음, 두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다. 아직 믿고싶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는 2017년부터 약 4년간 입었던 피해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즐겁게 일하기 위해 둘이 셀카를 찍자’며 집무실에서 신체를 밀착하곤 했다. 집무실 내 침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 접촉을 하거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초대해 음란한 문자와 속옷만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성적으로 괴롭혀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은 성추행 피해 사실을 대중에 공개한 A씨 측의 기자회견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피고소인이 없는 상황에서 성추행 고소 건의 수사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경찰은 “서울시가 박 시장의 성추행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 관련 수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 사실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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