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번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다. 스타일을 잔뜩 구겼을 뿐 아니라 소비로 점철된 미국 내부의 경제시스템에 근본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위기 이전부터 심상치 않았던 미국 달러의 위상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위기가 한창일 때 잠시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결국 `위기 이전의` 미국의 영광을 다시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 소비가 미덕?..`안 쓰고 저축한다`
종전 이후 최악의 위기는 바쁘게 돌아가던 `소비의 왕국` 미국마저 멈춰 세웠다. 엄청난 적자로 전세계를 먹여살렸던 거대한 엔진은 이제 동력을 잃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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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상무부는 국내총생산(GDP) 관련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인들이 돈을 더 벌어들였지만 가계 부(富)의 감소가 사상 최대폭에 달해 그 복구과정이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 저축률은 지난 해까지 1%안팎에 머물다 올들어 4%대에 진입했고 향후 10% 돌파는 물론 20%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인들의 이같은 변심이 글로벌 경제 전반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이 또다른 소비 왕국으로 부상하고는 있지만 수출 국가들로서는 잉여생산을 해소해 줄 큰 축을 상실하면서 수출 성장모델을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자금 이탈과도 맞물리면서 거대한 리밸런싱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 재정적자 갈수록 눈덩이..`신뢰도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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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트리플A(AAA) 등급을 보유한 영국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미국의 등급도 낮아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다.
미국이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부채 비중을 낮춰야 하는데 이로 인한 달러 폭락 역시 불 보듯 뻔하다.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잠시 약세 기조에서 탈피했던 달러는 경제가 회복기미를 보이자 다시 기수를 돌려 가파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 달러 약세의 늪..빠져나올수 있을까?
바야흐로 달러의 침몰은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처럼 보인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상실할 경우 전세계 국가들은 미국의 경제 및 외교 정책을 더이상 그들의 것과 연관지을 필요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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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앞발 속에 숨기고 있는 발톱을 간과해선 안된다. 미국이 수세에 몰린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누린 권력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이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로 언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높지 않은 확률이 실현되더라도 달러를 맨 윗자리에서 끌어내리는데는 최소 1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도 보고 있다.
최근 엘 에리언 핌코 공동창업자는 "문제는 달러 약세가 장기간 진행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진행되느냐"라며 "불규칙한 하락에 실제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스스로 어떤 해법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신 질서의 재편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채 해소책으로 지출 감소나 세금 인상 등의 구체적인 대책을 내세우기보다 최근 2년사이 급증한 부채를 향후 수년안에 갚을 수 있다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전세계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미래는 외부가 아닌 인플레와 성장과 같은 내부 요소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더 좌우된다는 설명이다.
워렌 버핏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달러 위기를 경고한 글에서 "미국 정부가 달러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적자와 제로 성장률에 갇힌 경제를 통제하는데 필수적인 노련함을 갖기를 원한다"고 당부했다. 헤어나려고 허둥댈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 미국은 여기서 탈출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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