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혁신 일궈낸 ‘자동차狂', 토요타 개혁 발목잡는가[파워人스토리]

'품질' 강조하며 토요타 다시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밀며 선구안 보여줬지만
인증부정 사태로 신뢰 크게 흔들려…재선임도 흔들
  • 등록 2024-10-06 오후 6:41:12

    수정 2024-10-11 오후 4:03:44

2009년 5월 21일, 도요타 아키오 당시 토요타 사장이 독일 서부 뉘르부르크의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열린 ADAC 취리히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위한 훈련 세션 중 가주 레이싱 팀의 자신의 레이싱 카 안에 앉아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나는 낡은 인간”

2023년 1월 26일 토요타자동차가 14년 만에 최고경영진 교체를 알리며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한 말이다. 도요타 회장은 앞으로 사토 코지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토요타를 ‘자동차가게’(クルマ屋)에서 ‘모빌리티컴퍼니’로 풀모델 체인지시킬 것”이라며 “자동차가게 주인이었기 때문에 토요타의 변혁을 진행할 수있었지만, 이를 넘을 수 없는 것이 내 한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본인은 회사를 대표할 권리가 있는 회장직에 올랐다.

도요타 회장은 2009년 리먼쇼크 위기 속에서 53세 나이로 사장직에 취임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71년만 4610억엔(4조 2039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냈을 때였다. 이전까지 토요타의 사장은 모두 ‘전문경영인’이었다. 창립자의 손자인 도요타 회장의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도요타 회장은 2009년 1월 20일 도쿄 토요타 본사 현관로비서 사장 취임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2021년 도요타 사장은 몬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난 적자의 책임을 질 ‘희생양’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이듬해 터진 리콜사태는 토요타의 존속을 묻는 위기였다. 도요타 자동차의 운전석 매트가 가속 페달에 끼여 급발진을 유발하는 ‘페달게이트’로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의 토요타 차량이 리콜되는 회사 최대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토요타 자산가치는 40조원 추락했고, 미국 내 토요타 차량 판매량은 급락했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생산시설 곳곳이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타 회장이 선택한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기’였다. 토요타는 급격한 확대노선을 멈추고 전 세계 생산설비를 대대적으로 조정했다. 차종과 모델을 단순화해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또 비대해진 조직을 슬림화시키고 본사의 품질본부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본사 통합 체제를 만들었다. 여기에 프리우스 PHV로 대표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V)를 전동차의 선구적 존재로 부각시켰다. 이 같은 개혁으로 2012년 토요타의 실적은 회복돼 2013년 토요타그룹의 세계판매량은 1000만대를 넘어섰고 2014년 2분기에는 6년만 최고이익을 올렸다.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이젠’(改善)은 토요타식 경영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토요타는 2023년 9월 기준 세계생산대수가 3억대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에 2억대를 생산한 데 이어 11년만 1억대를 추가생산한 것으로, 3.5초당 1대를 생산하는 셈이다.

이같은 실적의 바탕에는 도요타 회장의 자동차 사랑이 있었다. 토요타에는 ‘마스터 드라이버’라는 것이 있다. 토요타의 차량 성능과 주행 특성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테스트 드라이버로, 최종적으로 운전자가 느낄 수 있는 차량의 품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마스터 드라이버로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도요타 회장이다. 그는 자사 마스터 드라이버인 나루세 히로무를 스승을 삼아 혹독한 운전훈련을 받아 그가 68세 나이에도 자사 아마추어 레이싱팀 ‘팀 가주’(Team GAZOO)의 현역선수 ‘모리조’로 뛰고 있다. 토요타는 가주와 나루세의 별명인 ‘마이스터 오브 뉘르부크링’의 이름을 따 딴 고성능 브랜드인 ‘GR’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자동차 사랑은 시대를 꿰뚫는 선구안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동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던 상황에서도 토요타는 전력수급 문제와 배터리 기초소재 부족 등의 한계를 거론하며 전기차 전환에 미온적이었다. 이 때문에 토요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에 빠지고 PHV, PHEV 등 하이브리드카가 인기를 끌면서 토요타의 선택이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랬던 토요타에게 다시 과거의 망령이 덮치고 있다. 토요타 그룹사 전반의 차량에서 양산과정에 필요한 인증평가 과정서 부정행위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코롤라 필더 등 자동차 3종에 대한 생산이 3개월간 이어진 상황에서 토요타 자회사가 하청업체에 갑질까지 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타 회장은 “일본을 사랑하는 내가 일본 탈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일본의 침묵하는 다수는 자동차 산업이 세계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업계 내부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응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증 부정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고, 치열한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한 발언으로 여겨졌지만 일본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도요타 회장의 지나치게 독단적인 경영방식이 위기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회사나 경영진의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지적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품질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주간지인 재팬비즈니스프레스(JBpress)는 “아키오 회장이 집권한 이후 도요타 사내에서는 회장의 가치관만이 절대시됐으며 이를 숭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며 “과거의 도요타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하청기업들과의 관계도 단순 상하관계 이상의 강력한 유대의식이 있었지만 이러한 강점이 모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6월 3일 도요타 아키오 회장을 비롯한 10명의 이사들에 대한 재선임안이 상정된 토요타 정기 주주총회에서 도요타 회장이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AFP)
지난 6월 정기주총에서는 도요타 회장에 대한 재선임안 투표 찬성률이 71.93%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토요타 그룹의 인증 부정 논란이 “사회의 요구에 강하게 반하는 행동으로, 이번 스캔들은 대중의 신뢰를 해칠 뿐만 아니라 회사 가치에 대한 시장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등의 반대 이유가 나왔다. 이후 자사 인터넷 매체인 토요타임즈에서 도요타 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내년 이사선임은 어렵다”며 위기감을 나타냈다.

토요타는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일본 상장 기업 중 처음으로 영업이익 5조엔을 달성했다. 올해 역시 4조 3596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토요타라는 세계 1위 기업이 존속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문예춘추가 토요타 전·현직 사원 6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이같은 목소리가 도드라진다.

독불장군이라는 여론의 평가와 달리 이들은 도요타 회장에 대해 “사원이나 고객의 목소리를 유연하게 듣는 사람”, “직원인 우리가 ‘좀 더 세상물정을 알아야’ 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면서도 “토요타가 가솔린자동차에 최적화돼 CASE(연결·자율주행·공유·전동화라는 미래 자동차)에 뒤처진 것은 사실. 토요타는 이대로 쇠퇴할 가능성이 커, 그룹을 해체할 정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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