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동현 기자] 노점상인들이 12·3 계엄사태로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을 외치는 대규모 집회가 매주 도심에서 열리고 있는 탓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닌 장사를 위해 뉴스를 본다는 한 상인은 “저번 주까진 여의도로 출근하다가 오늘은 광화문으로 왔다. 요즘 워낙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집회를) 하니까 우리도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빨리 입수해야 먹고 살 수 있다”며 치열한 정보 전쟁의 분위기를 전했다.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집회 장소 인근에서 한 노점상이 응원봉과 방석 등을 판매하는 모습. (사진=박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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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집회는 어디서”…뉴스 보며 ‘정보 전쟁’진보·보수 양측 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 21일 오후 광화문 일대 곳곳에는 노점상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주까지 여의도로 향했던 이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집회 주최가 광화문으로 이동하자 모두 광화문 일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진보 단체의 집회가 열린 이날 광화문 앞 삼거리 양옆 도로 100m 내에는 응원봉과 방석 등을 진열해둔 매대가 열 곳 이상 눈에 들었다.
상인들은 불경기 속에선 사람이 몰리는 집회라도 쫓아가야 한다고 하나같이 하소연했다. 휠체어에 탑승한 채 LED 촛불을 팔던 박모(65)씨는 “일반적인 길거리 장사로는 요즘 남는 게 없다”면서 “이 시국엔 집회에서 유행하는 물품을 떼 와서 따라가는 게 대세”라고 전했다. 옆에서 함께 장사하던 상인 역시 “(응원봉이나 LED 촛불이) 여의도에서 이미 많이 팔려서 선점이 제일 중요하다”며 “최신 정보를 빨리 파악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집회를 쫓는 상인들은 빠른 선점을 강조하며 정보의 중요성에 입을 모았다. 집회 현장에서 방석을 판매하던 임모(75)씨는 “요즘 상인들은 정보에 뒤처지면 끝장”이라면서 “계속 옮겨다니는 집회에는 방석이나 응원봉처럼 가벼워서 기동성 좋은 거 들고 다니면서 쫓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1인용 돗자리를 팔던 이모(60)씨 또한 “우리처럼 집회 따라다니면서 물건 파는 사람이 최소 200명은 된다”며 “남들보다 먼저 가서 팔기 위해선 정보력 싸움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집회 장소 인근에서 한 노점상이 응원봉과 방석 등을 판매하는 모습. (사진=박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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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 드는 진보 집회 인기…다음 장소로 ‘헌재’ 물색
집회 성향도 노점상 입지 선정에 중요한 요소다. 이날 광화문 일대에는 진보·보수 단체 양측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였지만 상인들의 선택을 받은 곳은 ‘응원봉’ 사용 빈도가 높은 진보 집회였다. 응원봉 판매상인 조모(46)씨는 “태극기 집회도 가봤는데 거기는 보통 태극기만 흔들어대고 응원봉은 잘 안 산다”면서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보수 집회에도 가는데 아는 상인들은 무조건 이쪽(진보)으로 온다”고 전했다. 이날 보수 집회에서는 한두 명을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던 노점상인들 역시 대부분 진보 집회 인근에서 장사를 벌이고 있었다.
최근 집회가 곳곳에서 ‘스팟 형식’으로 열리며 상인들에게 최신 정보의 중요도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22일 오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트랙터 시위’를 벌인 남태령역에서도 방석을 판매하는 한 노점상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해당 집회는 당초 계획된 집회가 아닌 당일 오전 급하게 결성된 집회였다. 익명을 요구한 노점 상인은 “딸이 갑자기 알려줘서 급하게 와 봤는데 (상인들이) 아무도 없다”면서 “무료로 나눠주는 곳이 있어 오늘은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장소 선점을 위한 사전 답사를 하는 노점상들도 있었다. 이들은 탄핵 판결이 이뤄질 헌법재판소 앞을 향후 가장 유력한 집회 명소로 점쳤다. 광화문 집회에서 만난 한 노점상은 “시위대가 곧 북촌 쪽으로 간다는 말이 많다”면서 “시간 날 때 미리 장소가 어떤지 파악해두러 가보려고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