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현우(35) 이노레드 대표는 광고 고객사인 대기업 A사의 커뮤니케이션 팀장을 찾아가 그동안 진행해온 광고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박 대표가 ‘황금알을 낳아주던’ 고객사에 절교를 선언한 것은 ‘야근’때문이었다.
직원들이 A사 광고제작 작업을 기한 내 끝내려고 밤늦게까지 몇 차례 근무를 하자 직접 나서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시켜 버린 것. “귀사의 프로젝트를 맡은 이후 직원들이 밤잠을 설치며 일하느라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박 대표로부터 프로젝트 중단 이유를 들은 A사 팀장은 “직원들이 정말 행복하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정을 내기보다 오히려 부러움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노레드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근무규정은 ‘야근과 주말근무’다.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직장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직원들의 행복은 물 건너간다”는 게 박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광고에이전시 업계에서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광고제작을 끝마쳐야 하기 때문에 야근과 주말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통한다. 광고 에어전시 업계에서 일상화된 근무 관습을 타파해버린 이노레드는 업계의 대표적 이단아로 꼽힌다.
박 대표가 지난 2011년 회사설립 이후 직원들의 야근을 이유로 고객사의 광고 제작을 중단하기는 지금까지 모두 5차례. 매번 박 대표가 직접 고객사를 찾아가 양해를 구했다. 박 대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매출과 수익보다는 직원들의 행복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했기에 망설이지 않고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야근사태가 발생하면 똑같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인 이노레드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톱 5’ 광고업체 가운데 2곳으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을 정도로 해외에서 오히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업체다. 직원 55명 규모에 지난해 매출 90억 원을 올렸다.
이 회사의 몸값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게 된 것은 주요 사업 아이템인 ‘소셜 무비’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면서다. 이노레드가 상표권을 갖고 있는 소셜 무비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영상이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광고다. 기존에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광고를 소비자에게 전달했다면 소셜무비는 소비자가 직접 광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광고기법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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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셜무비 광고 이후 52% 수준이던 필립스 면도기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6개월 만에 68%로 급증하는 이변을 보일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이 소셜무비에 120만 명 가량의 고객이 참여했다. 이노레드는 지금까지 이런 소셜무비를 중국, 대만 등 세계 53개국에 수출했다. 이 콘텐츠는 세계 193개국 고객들이 체험했다. 그야말로 광고의 ‘한류’ 바람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직원들의 행복을 전제로 회사가 돈을 벌어야 정상이다. 직원들의 희생과 불행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회사들이 많은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아침,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자.’ 박 대표의 회사 운영 방침이다. 야근을 없애고 정규 근무시간이 끝나면 의무적으로 퇴근하게 하는 것도 저녁이 있는 삶을 직원들에게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가장 즐거운 아침을 위해서는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일 아침마다 전체 직원들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침에 경직돼 있는 마음과 표정을 웃음과 유쾌함으로 시작하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굳어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사진을 찍을 때면 모두 웃는 모습으로 변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웃음을 하루종일 이어지도록 하자는 게 그의 바람이다. 직원들과 함께 아침마다 찍은 단체사진이 이미 700장을 넘어섰다.
이노레드에서는 직원들이 유쾌하고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제도를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지각 데이’도 그중 하나다. 직원들은 한 달에 한번 의무적으로 지각을 해야한다. 지각데이에는 평소 출근시간이 8시지만 10시로 연장된다. 1시간 뿐인 점심 시간에 쫓기는 직원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에는 이를 2시간으로 늘리기도 했다.
“당신은 지금 직장생활이 행복하나요?”
박 대표가 매년 직원들과 연봉협상을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만약 ‘노’라는 대답이 나오면 박 대표가 직접 나서 며칠이고 그 직원과 대화를 통해 불행의 원인을 찾아내 해결해 준다. 이때 업무가 맞지 않는 것이 그 이유로 나오면 지체 없이 원하는 부서로 배치해 준다. 만약 원하는 업무가 없으면 아예 새로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업무가 새로 바뀐 직원이 전체의 20%에 달한다.
회사 오너가 직접 나서 직원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챙기다 보니 이직률은 업계 최저 수준인 5% 이하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에 단 2명이 퇴사했다. 이직률이 평균 30%를 웃돌 정도로 자리이동이 심하기로 정평이 난 광고업계에서는 이례적이다. 이 회사의 인사컨설팅을 맡았던 한 HR 컨설팅 대표는 “이직률이 5% 미만으로 나오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조직일 수 있다”며 오히려 낮은 이직률을 우려했을 정도다.
“직원들의 행복한 마음에서 나오는 상상력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어느 회사도 따라올 수 없는 이노레드만의 경쟁력입니다.” 박 대표의 ‘펀 경영’을 통한 경영 성과는 각종 지표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업체인 GfK는 지난해 8월 국내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 업체들 가운데 이노레드를 가장 뛰어난 업체로 선정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전년보다 올해 항상 더 재미있어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이노레드의 최고경영자로서 박 대표가 꿈꾸는 일관된 회사 비전이다. 그는 직원들이 혹시 경영목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매출 목표조차 없애 버렸다. “매출과 관련된 숫자를 보는 순간 직원들의 창의적인 사고가 사라진다”는 게 박 대표의 판단이다.
심지어 이 회사는 광고회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업무서류인 견적서조차 직접 작성하지 못하게 한다. 견적서를 쓰다 보면 프로젝트 금액을 써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이 매출과 관련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이 회사의 모든 견적서는 박 대표가 직접 작성한다. 직원들이 회사의 당해년도 매출을 알 수 있을 때는 연말 결산이 끝나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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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상 소장의 유머콕칭!]
슈렉과 쿵푸팬더를 만든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대표는 웃음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그는 아침마다 어떻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웃음이 혁신과 창조의 뿌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을 즐겁게 할까’라는 질문의 시작이 퍼니지먼트의 출발점이다. 리더의 질문에서 행복이 시작된다. 박현우 대표는 어떻게 하면 직원을 행복하게 할까 만을 궁리한다. 리더의 철학은 공기와 같다. 어느새 몸과 영혼 속에 스며든다.
2. 잡담이 즐거움이다.
일본 메이지대학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최근 ‘잡담이 능력이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예상을 깨고 50여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소한 잡담은 긴장을 풀게 하고, 웃음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노레드의 아침 30분 잡담은 튀어오르기 직전의 움츠린 개구리와 같다.
3. 행복도우미가 되라.
직원들의 불행을 전제로 성장하는 회사가 있고, 직원들의 행복을 밑바탕 삼아 약진하는 회사가 있다. 박현우 대표는 본인이 ‘이노레드의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한다. 회사를 성공시키려면 직원을 성공시키고, 직원을 성공시키려면 직원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